60년 한 서린 그곳 ‘적군묘지’를 아시나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03 20:52

본문

6.25 전쟁 당시 서부전선 최전방이었던 경기도 파주엔 생소한 이름의 묘지가 하나 있다. 적성면 답곡리 도로변 한쪽에 자리 잡은 ‘북한군/중국군 묘지’. 한겨울에 찾아간 이곳엔 눈밭 위로 발자국이 이리저리 찍혀 있었다. 파주 금강사 행자(行者)인 묵개((黙介, 본명 서상욱) 선생의 것이다. 6.25 전쟁으로 죽은 적군의 혼령을 위해 이곳에서 매일 밤 천도재를 지내는 그는 “이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죽는 줄도 모르고 전쟁터에 끌려와 죽은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북한군/중국군 묘지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6.25 전쟁 이후 수습된 북한군 유해를 안장한 곳이다. 제네바 협정과 인도주의 정신에 따라 지난 1996년 6월 조성됐다. 총면적 6099㎡인 묘지는 북한군 유해만을 안장한 1묘역과 북한군과 중국군이 혼재된 2묘역으로 구분된다. 우리 군에선 원래 이곳을 ‘적군묘지’로 불렀다가 현재와 같이 중립적 표현으로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유해 숫자는 총 1102구에 이른다. 오와 열을 맞춘 묘비는 모두 북향이다. 북한군과 중국군의 고향 방향인 개성 송악산을 바라본다고 한다. 대리석 묘비엔 전사자의 이름과 발굴 장소 등이 적혀 있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무명인’으로 표시했다. 몇십 구의 유해가 합구된 경우도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전국에서 발굴해 옮겨온 것이다. 무장공비나 수해 때 떠내려온 북한인 유해도 포함돼 있다.

묘지는 인근 부대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사실상 방치됐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흙으로 된 작은 봉분과 나무 묘비는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고, 여름이면 잡초로 덮힌 묘지 곳곳이 빗물에 고인 물로 흥건했다. 지난해 2월 1일부터 5월 초까지 북중군 묘지에서 108일 동안 기도를 올렸던 묵개 선생은 “봉분은 들쥐 때문에 구멍이 뚫렸고, 장마 때는 묘역이 무너지기 직전이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묘지의 열악한 상황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중국인 참배객 등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묘지 관리 문제가 공론화됐다. 북중군묘지평화 포럼 대표인 권철현 전 주일대사는 묘지 재단장을 국방부에 공식 건의하기도 했다.

국방부는 지난해 8월부터 5억 원을 들여 묘지를 재단장했다. 나무 묘비를 대리석으로 바꾸고 화장실과 진입로도 새로 만들었다. 묘지 아래쪽엔 장마 때나 해빙기에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옹벽을 설치했다. 재단장이 완료되자 묵개 선생과 권 전 대사, 경기문화재단 엄기영 이사장, 파주시의회 임현주 의원 등이 재단장 기념식을 열기도 했다.

이들은 시설 개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엄기영 이사장은 “북중군도 낯선 땅에 와서 죽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자”라며 “구천을 떠도는 이들 영혼들을 안아주지 못해서야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얘기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임현주 의원은 “적군이라고 해서 내팽개치면 안 된다”며 “이들을 위안하고 감싸는 게 우리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고, 우리 역사의 나아갈 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