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제 소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9-08-29 15:30

본문

박.jpg

시인, 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박철호
 
요즘 인문학 강의를 유튜브로 소개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의 철학교수가 나와서 강연을 펼쳤다. 그 교수는 한국인의 독특한 심성에 대하여 말했다. 한국인은 분노조절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한다. 한국인은 분노인지, 분노가 아닌지 모를 예매한 지점을 잘 선택하지 못한다고 한다. 특히 가족이나 매우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나 언어를 서습 없이 한다는 것이다. 특히 술을 마시고 난 다음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내뱉는 말은 말의 강도가 훨씬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말의 억양을 한 옥타브 올리는 것에 매우 신경 쓴다.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가는 것은 화가 엄청났다는 신호로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에게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싸움을 전제로 한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이 불리할 때 목소리가 높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차를 운전하는 경우 조그마한 문제가 생겨도 목소리를 높인다.
 
대개 동승자가 없는 경우 제 마음대로 운전하고 싶은 경향이 많다. 심지어 자신이 잘못하고도 남을 핑계 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접촉사고 일수록 잘못이 많은 쪽이 큰소리를 친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도 되지 않은 자가 당착을 가진 사람이 허다하다. 왜 이런 진짜 말도 되지 않은 행위들을 할까?
 
4-50년 전 만해도 겨울이 되면 시골에서는 할 일이 없었다. 특히 농사로 생업을 하던 사람들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면 할 일이 전무이다. 그들이 할 일은 과객이나 손님들이 자고 가는 동네 사랑방에서 봄에 쓸 농기구를 손보거나 술추렴 화투판을 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의기투합이 되면 투전판이 벌어진다. 이 투전판에 꼭 못난 사람들이 있다. 싸움의 발단은 방귀 낀 놈이 성내는 형국이다. 자신의 밑천이 다 떨어진 사람이나 돈을 잃은 사람들이 시비를 붙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가 여름 동안 뼈 빠지게 머슴살이를 해서 일 년 세경(월급)을 받은 사람들로 투전판을 통해 한 밑천 벌고 싶은 사람들이었다. 또 한 부류는 입으로 한 밑천 땡길 의향으로 투전판을 기웃거리던 사람이다. 그들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은근히 시비를 붙인다. 목소리부터 크게 한다. 그리고는 파토를 놓는다.
 
또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이 벽제소리이다. 벽제는 정승이나 대감들이 행차할 때 잡인의 경계를 금하도록 하는 길잡이가 소리치는 고함을 벽제 소리라고 한다. 벽제 소리는 세를 과시하는 힘이었다. 어느 집 하인의 벽제 소리가 큰지에 따라 세력이 판가름 난다. 그 뿐만이 아니다. 따르는 구종별배들의 숫자도 문제다. 숫자가 많아야 허세도 자랑하고 권위도 선다고 생각했다. 옛날 대갓집은 대문 옆에 행랑채가 있었다. 이곳은 제일 목소리 크고 등치 좋은 하인이 행랑아범과 함께 기거한다. 일단 목소리가 커야 노비로 값이 올라간다. 특히 옛날이나 지금이나 허세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목소리 큰 사람이 하나 정도는 붙어야 사는 맛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대개 목소리 큰 사람들은 하류계층이나 천민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세월이 수없이 흐른 지금에도 그 버릇이 그대로 지속되는 모양세다 길을 비끼라고 부르던 벽제소리는 사라졌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목소리 큰 자들의 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대개 그들은 천민의식의 유전자에 감염된 자들로 보인다.
 
양반들의 목소리는 작았다. 벼슬이 높으면 높을수록 목소리가 작고 말이 없어야 한다. 조선 500년을 통해서 목소리 적은 신하들이 많은 시기가 제일 살기 좋은 시절이었다. 임금이 잘하면 목소리 높은 신하가 나올 필요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단체나 목소리가 크고 그 목소리가 밖으로 울려 나가면 그 집단은 문제가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부터라도 목소리를 적게 하면서도 자기주장을 논리정연하게 관철하는 법을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할 것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심리는 일단 목소리부터 크고 보자는 천민의식과 같은 것이다. 작금에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도 권력을 잡았거나 정책을 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작아야 한다. 권력 잡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크면 서민들이 살기가 힘들어진다.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진다. 정책 결정이나 의견 수렴은 조용히 해야 한다. 그래야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목소리를 크게 내어서는 안 된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은 허장성쇠의 종놈들이나 하는 짓이다. 조용히 일을 한 정승판서는 더 많은 영향력을 주었다. 잘난 것처럼 난리를 치고 고함 소리가 큰 고관대작들은 결국 손가락질을 받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했다. 선전선동해서 만들어 낸 인위적인 일들은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 때 더 큰 일을 하게 된다. 말 타면 종 데리고 싶은 인간의 오만은 결국 자신을 헤치고 주변을 죽이게 된다. 인간으로서 품위와 체통을 지킬 때 값어치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말 많은 분노 장애를 가진 사람은 아닌지? 고민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