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국론 (풍수)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9-08-29 15:35

본문

평안도 江界는 첩첩산중의 변방에 자리 잡아 교통 등이 좋지 않은데도 오랫동안 명성을 떨쳐왔다. 예부터 전국에서 미인이 많기로(色鄕) 유명한 江界는 이른바 풍수적으로 玉女散髮形또는 玉女開花形形局을 하고 있는 吉地에 속한다. 山川이 수려한 江界에는 南川, 北川山主南山을 감싸면서 禿魯江(독로강)에 흘러들어 가고 있으며 그 강 너머에 우람한 獨山이 우뚝 서 있다. 풍수적 전설에 따르면 南山은 아름다운 여성의 산으로서 마치 속옷을 반쯤 벌린 채 알몸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獨山男根形局을 하고 있다. 본디 渭原에 있었다는 이 獨山은 어느 달 밝은 밤에 南山의 매력에 끌려 날아왔으나 禿魯江에 막혀 넘어오지 못한 채 對岸에서 애타게 쳐다보고만 있었다는 것. 이 때문에 江界는 원기 왕성한 獨山과 발랄한 南山, 陰陽의 두 산이 호시탐탐 노려보면서 내뿜는 生氣의 덕으로 번성하고 있다. 風水에서 玉女散髮形(아름다운 여인이 머리를 자연스럽게 내려뜨린 )案山(앞의 산)이 얼레빗, 右白虎가 거울모양, 左靑龍이 분을 넣는 갑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을 일컫는다. 여인들이 盛粧(성장)하기 위해서는 맨 먼저 머리를 푼다. 그리고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치장을 한다. 이 같은 이치에 따라 玉女散髮形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보는(羨望)의 자리에 앉거나, 또는 絶世佳人이 태어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풍수를 모르는 사람들도 더러 金鷄抱卵形」 「玉女彈琴形」 「行舟形」 「飛鳳歸巢形등의 명칭을 들어보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옛 풍수가들이 땅의 생김새에 따라 그 이름을 붙여 놓은 것들이다. 이러한 形局名은 셀 수 없이 많다. 전국 방방곡곡에 각자 나름대로의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40여 가지의 명칭이 가장 많이 쓰여지고 있다. 예부터 風水的 吉地중의 하나인 平壤行舟形이라고 일컬어졌다. 慶州(혹자는 回龍顧祖形이라고 한다) 淸州, 茂朱도 모두 비슷한 地形을 하고 있다. 行舟形은 풍수에서 사람을 가득 태우고 장차 출발하기 위하여 배를 멈추고 있는 形局이므로 이러한 땅에는 人物 財貨가 풍성하게 모인다고 믿어지고 있다. 그러나 배는 키, 돛대, 닻을 갖추어야 제구실을 한다. 따라서 이것들에 결함이 있으면 안 된다. 또 배에 구멍 뚫으면 침몰하듯 깊은 우물을 파는 것도 꺼린다.
 
朝鮮朝李重煥八域地에도 예부터 平壤에서는 풍수설에 따라 우물 파는 것을 꺼려했다는 기록이 보일 정도로 예전 行舟形지방에서는 깊은 우물을 파지 않았다고 한다. 慶州지방에는 形局論에 따른 재미있는 鳳凰臺說話가 전해오고 있다. 新羅末에 새로 일어나고 있는 高麗의 편을 든 한 道僧慶州에 내려와 괴상한 소문을 내고 다녔다. 『「飛鳳形慶州의 땅기운이 다하여 봉황이 금방 날아가 버릴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신라조정에서는 부랴부랴 이 봉황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봉황의 알 모양으로 된 큰 구릉을 20여개 만들었다.(봉황이 알을 품으면 날아가지 않는다고 믿었던 듯). 그리고 봉황이 마실 수 있도록 깊은 우물까지 팠다. 이 바람에 다시 地運이 일어날 수 있었던 慶州가 망(침몰)하고 高麗가 흥왕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하찮은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人造봉황의 알(봉황대)이라고 일컬어진 것들이 최근 155호분의 발굴과 모두 이름이 전해오지 않는 왕릉임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이러한 形局論을 믿고 그의 맞춰무덤을 쓰고 집을 지으려고 했다. 朝鮮朝末때까지만 해도 전국 방방곡곡을 吉地凶地로 나누어 놓고 가급적 吉地에서 살려고 노력을 했다. 그리고 前回에서 말했듯이 風水的 缺陷이 있는 곳에는 산을 만들거나 탑을 세우는 등 風水的 裨補를 했다.
 
우찬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