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의 검은 색 리본과 완장은 일제의 잔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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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1-02-15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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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남숙 예지원 원장

세계 어느 국가나 민족도 모두 자신들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고정불변이 것이 아니라 주변국가와 다양한 방법의 교류를 통해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한다.


우리가 1876년 일본과 불평등 조약을 맺고 개항을 한 시기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 세계가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의 불평등 조약으로 인해 이 근대화의 과정에서 일본의 간섭과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고 1910년부터는 본격적인 지배체제하에 들어가 35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따라서 그 시기의 변화를 일제의 의도된 정책에 의한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 시기에는 일본외에도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등 세계 각국의 문물이 들어와 우리의 생활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영정의 검은 색 리본과 완장은 조선시대 후기

의제개혁과정에서 유입된 서구문물


영정의 검은 색 리본과 완장(腕章)은 우리의 상장례문화 중에서 일제의 잔재로 가장 많은 지적과 논란이 있는 부분이다. 그 내용이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조선총독부에서1934년에 반포한 의례준칙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조선시대 후기 우리의 의생활이 서양복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유입된 서구문물이다.


우리나라는 비록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이미 18세기 말 천주교가 들어와 있었고 1876년 개항 이후에는 일본은 물론 미국, 러시아, 프랑스 등 유렵 국가와의 교류로 인해 의생활에도 변화를 요구하는 기류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기류를 바탕으로 고종은 우리옷의 변화를 도모하는데 1884년 갑신의제개혁 에서는 복식제도의 간소화와 관리의 예복을 흑단령으로 하도록 한다.


고종의 이러한 의제 개혁에 반대하는 상소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올라왔으나 고종은 의제개혁의 필요성을 들어 설득하기도 하고 파직의 법을 시행하기도 하면서 개혁을 밀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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議奏 권3, 왼팔에 상장을 부착하는 방법

議奏 : 1895년3월부터 1896년 9월까지 정부 각부에서 議政府(內各) 회의에 제출한 請議書, 內閣會議決定文, 내각회의를 거쳐 국왕에게 올린 上奏文과 裁可를 얻은 후 발표한 指令 法律 勅令등 공문을 의정부 編錄課에서 편찬한 책


1895년 4월에는 육군 복장규칙과 경무사 이하의 복제규칙이 반포되는데 이 때 제정된 육군과 경무사 이하의 옷이 서양복식이다. 그리고 8월에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발생하자 이로 말미암아 육군복장과 경무사 이하 복장의 상장(喪章)제도가 정해지는데 그 내용이 기(旗), 검(劍)의 손잡이, 팔에 검은 천을 두르는 것〔검은색 완장〕이다.


그리고 1900년에 대례복이 서양복식으로 바뀌면서 그에 따른 상장제도가 1905년에 제정 공표된다. 일본의 의례준칙은 우리가 흑포완장을 처음 사용한 40년 후이고 대례복의 상장제도가 생긴 후 30년 후의 일이다. 그리고 그 제도는 일본의 제도도 아니다.


이러한 표상식은 이미 영국이나 러시아 미국에도 있었던 것으로 일본도 양복을 입었을 때는 그와 같은 표상식을 했다.


2015년 링컨대통령 서거 150주년을 맞아 링컨대통령 장례식이 재연되었는데 여기에서도 팔에 검은색 완장을 하거나 검은색 천으로 천막을 장식한 장면을 볼 수 있다. 링컨대통령 장례식은 1865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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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링컨대통령 서거 150주년에 재연한 링컨대통령 장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