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의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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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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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기 숭의여자대하교 교수.
                                                                            성균관 유도회 부회장
도교수련자들이 고집스러울 정도로 죽음을 거부하고 불사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의미를 분석할 수 있다.
첫째, 인간의 인격을 정신과 육체의 분리될 수 없는 전체로 보는 관점이 철저해진 탓이다. 이러한 사고가 철저해지면 통일된 인격의 존속기간인 인간의 일생은 일회적(一回的) 중요성을 띤 것으로 부각된다. 주지하는 바아 같이 인도인 사우에서는 끝없는 윤회를 괴로움으로 파악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모색한 반면, 서구종교에서는 행복한 영생을 얻고 불행한 영생을 피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들에게 영생은 이미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교적 사유는 불사의 획득 그 자체를 문제로 삼았다. 왜냐하면 죽음과 동시에 인간의 구성요소는 분해되므로 설사 존속하는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이미 인간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인격의 전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이를 가능한 한 오래 보존하려는 뜻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후에 불교의 윤회사상이 도교에 수용된 후에도 이러한 인간 삶 중시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신선사상의 이론을 집대성한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朴子)에서 생사일여(生死一如)를 주장한 장자를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둘째, 도교적 사유에서 개인의 구원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고려되었다는 점이다. 도교가 대두하여 개인의 구 원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이전, 고대 중국사회는 주로 집단의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 하늘이나 사직(社稷) 등에 올리는 제사도 어떤 집단의 번영과 보존을 위한 것이었을 뿐 개인의 영혼 구원 문제는 중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인의 소박한 요구, 행복과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인간의 욕구를 바탕으로 한 도교가 출현하여 장생불사를 구원의 목표로 제시하게 된 것이다. 장생불사라는 이상이 부각된 것은 기철학의 시각에서는 사후세계나 영혼불멸에 관한 이론이 정착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일한 기철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장자는 개인의 영생을 언급하지 않고 우주를 포괄하는 근원적 도의합일을 강조한다. 따라서 언떤 의미에서는 자연이라는 전체속에 개인의 문제가 융해되어 버리는 측면도 나타난다. 장자의 언급 가운데 “나에게 주어진 운명도 전체적인 도의 입장에서 달관하며 극복하라”는 권고가 많은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도교적 사유에서는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앞에서 살펴 본 것은 장생불사의 이상이 도교적 사유에서 궁극적 테마로 자리 잡은 배경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불사라는 목표는 단순히 노화를 늦추고 건강하게 주어진 수명을 다 누린다는 일반적 의미의 양생(養生)과는 본질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불사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여 일반적 의미로써 양생의 논리적 비약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도교 수련자들은 이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장자가 밝힌 것처럼 기철학적 관점에 의하면 삶은 기의 모임으로, 죽음은 기의 흩어짐으로 파악된다. 도교적 사유에서도 이 대전제는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만 한 걸음 나아가 흩어지지 않는 진기(眞氣)를 획득하면 장생불사할수 있다는 견해에 도달하였다.
 
갈홍의 포박자에서 밝힌 전단(全丹)제조는 흩어지지않는 진기를 얻기 위해 불변성과 조화성(造化性)을 갖춘 특수한 약물을 제조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인간의 육체나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섭취하는 보통의 재료는 결국 일시적인 존속기간을 넘기지 못한다. 생각하고, 천지의 수기(秀氣)가 농축된 금단이라는 특별한 약물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갈홍의 생각에는 자연의 법칙을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인간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무릇 만물 중에서 인간보다 현명한 존재는 없다. 그러므로 얕은 지식을 지닌 사람이라도 만물을 이용할수 있으며 깊은 지식을 깨친 사람은 불로장생할 수 있다“(對俗 편)
 
갈홍은 이어 인간이 신선이 되는 것은 명철한 지혜로 천지조화의 공을 훔친 결과라고 말한다. 이는 인간에게 부여된 죽음이라는 숙명이 인간의 지혜와 노력에 의해 극복된다는 보기 드문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것을 금단제조라는 약물 제조를 통해 시도해 본 것이다. 갈홍에 의해 제창된 금단제조의 외단설(外丹設)은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당(唐),송(宋) 무렵부터는 인간의 심신수련을 통해 인간에게 갖추어져 있는 근원적 원기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내단설(內丹設)이 유력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원기야말로 참된 의미의 금단이라는 견해는 갈홍보다 약간 앞선 인물로 알려진 위백양(魏伯陽)의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 잘 드러나 있다. 주역참동계에서는 인간이 우주와 인간을 생성시킨 근원적 일기(一氣), 즉 원기를 얻음으로써만 장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주역에서 천명한 “시작을 탐구하여 끝을 돌이키니 생사를 알 수 있다(原始反終故 知死生之設)”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송대 이후 내단파의 논리는 더욱 심화된다. 그 기본적인 강령은 원기를 원정(元精), 원기(元氣), 원신(元神)의 3원소로 구분하고 이를 엍어가는 수련법을 밝히는 데 있다. 3요소 가운데 원정은 특히 생명의 원동력으로 소중한 의미를 지닌다. 윤진인(尹眞人)의 ⟪성명주지(性名主旨)⟫에서는 인간이 생사를 면하지 못하는 이유를 “태어날 때의 근본원기와 죽음의 원인을 모르는 데 있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정(精)의 충만함이 왕성한 생명의 원인, 정의고갈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밝힌다. 이렇게 본다면 생명력이 충일한 어린아이의 상태로 복귀하거나 더욱 근원적으로 생명의 원천에 환원하는 것이 장생불사의 요체가 된다.
 
이러한 수련과정은 반본환원(反本還元), 또는 역(逆)의 과정으로도 불리어진다. 근원적 원기에서 인간과 만물이 생성되는 순의 과정을 소급하여 되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상은 외면상 자연의 순리에 거스른다는 면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이는 타당한 이해라고 볼 수 있다. 오히려 내단파에서는 보통의 생로병사를, 자연적으로 주어진 무한한 생명력을 욕망의 남용에 의해 손상시킨 결과로 생각한다. 자연을 손상시키는 욕망을 잠재우고 자연과 동화하려는 자세가 수립되었다 하더라도 수련의 진행과정은 외부의 우주적인 리듬과 항상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수련의 결과로서 도달된 타인의 경지도 자연과 완전히 일체가 된 경계라고 한다. 내단파의 사상은 갈홍의 외단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갈홍의 외단법이 자연을 정복한다는 과학적 사고에 유사한 것이라면, 내단설은 철처히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입장으로 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단수련을 통한 불사의 추구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측면은 심신을 아울러 닦음으로써만 이상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견해이다. 도교적 사유에서는 본래부터 마음과 몸을 떠날 수 없는 전체로 간주하는 것이 하나의 전통으로 내려왔다. 내단파에서도 이를 계승하여 마음의 측면을 성, 몸의 측면을 명이라 부르고 이를 함께 수련하는 것을 성명쌍수(性命雙修)라 부른다. 이 성명쌍수를 통하여 장생하게되는 주체는 과연 무엇인가.
 
외면적으로 드러난 바에 의하면, 내단수련도 육체의 장생을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앞에서 살펴 본 대로 내단수련의 요체는 인간생명력의 근원에 소급하여 원정(元精) • 원기(元氣) • 원신(元神)을 체득하는 데 있다. 이 근원은 육체나 정신 어느 요소에도 속하지 않는 불가분의 통합체이며, 경험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後天) 존재가 아니라 경험 이전의(先天) 존재라 한다. 따라서 몸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 제3의 생명이 탄생하여 그 생명이 영생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를 내단파에서는 법신이라고 부른다. 이 법신은 일상적 또는 세속적 자아가 아니라 성화(聖化)된 자아라고 볼 수 있다. 즉 세속적 자아의 죽음 후에 재탄생된 참된 자아인 셈이다. 따라서 내단파에서 현실적인 육체의 장생만을 추구한다고 보는 것은 잘못임을 알 수 있다. 육체적 영속의 단계는 옥액환단(玉液還丹)이라 하여 참된 법신의 영생을 뜻하는 금액환단(金液還丹)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처음에는 건강과 장수의 추구로부터 출발한 도교적 사유가 결국 세속적 자아의 죽음을 통해서만 참된 법신이 태동한다는 사상에 귀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