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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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9-11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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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 온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을 것이고 형제들을 만날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명절이 오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고 명절에 대한 알레르기가 일어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몇 해 전부터 명절이 가까워지면 방송에서 ‘명절 증후군’에 대하여 유별나게 떠들었다. 마치 명절이 주부들에게 일거리와 스트레스를 주는 것처럼 난리를 쳤다. 시가집을 먼저 갈 것인지, 처갓집을 먼저 갈 것인지를 두고 난리를 치고 사내들은 명절만 되면 음식만 쳐 먹는 식충이(?)로 몰아 붙였다. 그 중심에는 도회지 생활을 하면서 가족이 무엇인지, 명절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도 않은 듯한 30대 후반부터 50대 초반의 여자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겨우 할아버지 제사상 정도 차리거나 형제조차 몇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종갓집 며느리들은 ‘명절 증후군’ 소리를 하지 않는다. 종손이 뭔지도 모르고 장남이나 외며느리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어디선가 들은풍월을 가지고 명절만 되면 명절 타령을 하고 명절 증후군을 말한다. 인간이 사는 맛이 무엇인지, 인생이 뭔지를 아는 사람은 명절이 자꾸만 새롭게 느껴진다. 우리 속담에 ‘봉제사 접빈객’이라는 말도 있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도 있다. 유교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에 대한 정화와 수련이다. 그 수련 방법으로 조상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는 것이 제사이다. 진짜 유학자들은 귀신을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상제사는 지냈다. 그 제사는 귀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조상을 섬기는 마음으로 예의를 표시했고 자신을 뒤돌아보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그런 제사가 언제부터인지 귀신을 섬기는 일이 되어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부자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졸부가 된 사람은 손님을 대접하는 방법이 다르다. 아무리 돈이 많고 지체가 높은 척 유세를 떨어도 사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를 보면 그 자가 제대로 된 인간인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는지 알 수가 있다. 인간은 굶어도 인간다운 예의범절을 지키며 살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 옛날 어른들은 며느리와 사위를 뼈대 있는 집 자손으로 맞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손님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살았다. 그게 바로 참 인간의 모습이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 형제가 3남 4녀이고 자기 형제는 11남매였다. 형들은 일찍 객지로 나가 자립하자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농고를 졸업한 이 자가 어머니를 모시게 되었다. 어머니는 장손이 부재인 집안의 둘째 며느리임에도 도리를 다하여 엄중했던 일제시대 시부모의 장례식을 치르고 상청을 만들어 삭망제를 하고 삼년상까지 치렀다. 일가친척들을 챙기고 대소사도 챙겨 명절이 되면 집안의 잔치였고 설날은 세배꾼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 자는 제 어미가 죽으면 형들과 조카들이 할아버지 재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까봐 형들과 조카들을 철저하게 배척했다. 그리고 자신은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중행사도 참여하지 않고 아버지의 형제들도 찾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곳간 열쇠가 며느리 손에 맡겨졌다. 이 자의 마누라 역시 일가친척들을 대접할 줄 몰랐다. 제 서방, 제 새끼 먹을 것은 철저하게 챙겨도 주변 돌아볼 줄을 몰랐다. 일가들이 차츰차츰 그 집과 인연을 끊었다.
 
어느 날부터 이 자의 어미는 자신이 죽으면 대문간에 풀이 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어미는 91살로 죽었고 그 분의 보살핌을 받은 일가들은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모두 찾아 왔다. 20년 전에 들어온 부의금이 몇 천만 원이었다. 이 자는 그 돈마저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어미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파킨슨이 왔고 급속히 진행되어 몇 년 만에 죽어 버렸다. 동네 사람들과 일가친척은 그럴 줄 알았다면서 혀를 내 둘렸다. 어미의 예언대로 그 집 대문간에는 풀이 돋았다. 이 자의 마누라는 자식들조차도 찾지 않은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 자의 장모는 어느 고을 부잣집 며느리였다. 남을 대접 할 줄 모르던 그 여자도 시어머니가 죽고 난 다음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죽자 3남3녀의 자식들이 찾아가지 않아 어떻게 죽었는지조차도 모른다고 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몇 십 년 전이나 몇 백 년 전이나 동일하다.
 
명절은 부모를 모시고 일가친척들을 만나는 복되고 기쁜 날이다. 그렇게 모여야 그 자식들도, 그 다음세대들도 그렇게 모인다. 자식은 부모를 보며 자라고 부모와 같은 생활을 한다. 덕스런 부모의 자식들은 덕스럽게 살고 망쪼들 부모의 자식들은 망쪼들게 사는 것이다. 아이들을 군대보내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자식을 거지같이 키우면 거지가 되고 대장부로 키우면 대장부가 된다. 가정이 복 받는 비결은 어미의 손에서 나오고 마음에서 나온다. 명절이 오면 제 피붙이조차도 만나기 싫은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제 자식들은 어떻게 살아갈지 알기가 할까? 사람 사는 집은 사람들로 들끓어야 한다. 명절은 형제들이 모이고 나누고 축복하며 즐기는 날이다. 그 모임 속에 복이 함께하고 복이 주어지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명절을 맞이하는가?
 
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박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