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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2-06 17:05
고대 올림픽 선수들은 왜 나체였을까?
 글쓴이 : 한국장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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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스타디움 입구에 아치형 성벽이 있다.

역사는 햇빛을 받아 더욱 명료해지고, 신화와 전설은 달빛을 받아 구전된다는 말이 있다. 역사는 양(陽)이고 신화와 전설은 음(陰)이라는 말이다. 양과 음은 상호보완적이고 호혜적이다. 어느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
 
그리스는 신화의 땅이자 전설의 땅으로 통한다. 수많은 역사가 있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신화를 밝혀내면 낼수록, 햇빛을 받을수록 더욱 명료해져 역사가 될 확률도 높아진다. 그 연결고리를 찾는 작업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에는 그리스의 핵심 유적지이자 올림픽 성화 채화지인 올림피아(Olympia), 세계의 배꼽이라 불리는 델피(Delphi), 세계 10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인 메테오라(Meteora), 세계문화유산 지정 1호인 아테네(Athens)신전 등을 한 번 살펴보자.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피아는 현대 올림픽 성화 채화지다. 길 주변엔 편백나무 같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이 유난히 많다. 가는 곳마다 군락을 이루고 있다. 편백나무가 아니고 ‘사이프러스’라 불리는 측백나무다. 십자가를 만들던 나무로 알려져 있다. 주로 묘지 주변에 근처에 이루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예로부터 부활을 믿으며 사후세계를 따로 두지 않았다. 현세와 전생이 공존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공동묘지는 항상 마을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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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학자 조용헌 박사가 올림픽 개최지인 올림피아에서 동행자들에게 지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공동묘지를 산자들의 친숙한 놀이터로 여겼다. 공동묘지가 음이고 죽은 자가 음이라면 역시 음과 양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공동묘지에 매장된 시신은 3년 뒤에 다시 뼈를 수습해서 화장하고 난 뒤 납골당에 영원히 봉안한다. ‘사이프러스’는 공동묘지에 묻힌 시신이 하늘의 신비스런 영령을 받는 매개체로 여겨진다. 그래서 삼각형으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자라는 측백나무를 통해서 영령을 받아 시신이 부활한다고 믿는다. 그리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나무가 측백나무다.
 
최고의 신 제우스(Zeus)를 모셨던 성역 올림피아에 다다랐다. 올림피아는 올림픽 성화 채화지이기도 하지만 고대 올림픽이 열렸던 장소이기도 한 곳이다. 조용한 동네다. 분위기 자체가 사람을 안정되게 한다. 여기서 고대 올림픽을 개최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으로 짐작된다. 그리스는 기본적으로 도시국가다. 수많은 도시국가가 서로의 영토보존과 생존을 위해서 전쟁을 치렀다. 고대 올림픽은 각 도시국가에서 선발된 선수들과 관람객의 안전을 위해서 대회 기간 앞뒤 3개월 동안은 전쟁을 중지했다. 즉 고대 올림픽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라기보다는 하나의 평화 행사였던 셈이다. 올림픽 때는 각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달리기를 중심으로 멀리뛰기, 창던지기, 원반던지기, 레슬링, 승마, 복싱, 전차경기 등의 종목에서 기량을 겨뤘다. 뿐만 아니라 시와 음악까지 콘테스트를 했던 일종의 종합문화행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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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둥이전사
출전선수들은 전부 나체였다. 서양의 나체숭상문화의 발원지가 바로 그리스이고, 올림픽이었던 것이다. 신(神)도 나체로 형상화 돼 있다. 나체는 강인한 체력을 가진 자만이 보여줄 수 있다. 고대 올림픽은 어쩌면 뽐내고 싶은 인간 욕구를 발현하는 장(場)이었는지 모른다.
“나체는 신과 인간의 평등을 전제로 하고, 모든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때로는 솔직한 게 여과 없이 드러나거나 지나치면 음탕한 것이 되기도 하지만….
주변을 한껏 둘러본다.
 
“이곳은 전쟁을 하라고 해도 못할 동네입니다. 분위기가 사람을 안정되게 합니다. 명당 중의 명당입니다. 지형을 가만 보니 하나의 산을 중심으로 두 강이 만납니다. 물과 불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그 정중앙에 제우스 신전이 있습니다. 지형과 건물구조를 볼 때 핵심이 제우스신전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우스신전을 둘러싸고 있는 나머지 건축물들은 부속건물입니다. 아마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이러한 지형을 감안해서 올림픽 개최지를 이곳으로 정하고, 전쟁을 중단하면서 경기를 치른 게 아닌가 여겨집니다. 올림픽은 일종의 평화조약이었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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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최고의 신 제우스 신상이 있었던 신전에서 방문객들이 제우스 신상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두 강은 클라데오스(Kladeos)와 알페이오스(Alpheios)며, 한 개의 산은 크로니온(Kronion)이다. 올림피아의 중심지, 즉 제우스 신상(神像)은 산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끝닿는 지점과 두 강이 만나는 지점의 중간쯤에 있다. 대충 눈가늠만으로도 짐작이 가는 거리였다. 절묘한 위치에 제우스 신상과 올림픽 성화채화지가 자리 잡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과 신의 균형뿐만 아니라 자연의 음과 양의 균형도 감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동양의 풍수가 그대로 적용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국의 두물머리와 비슷한 지형이라는 느낌이다.
 
“한국의 두물머리를 생각하면 됩니다. 한강의 두물머리가 얼마나 경치가 아름답고 명당입니까. 그런 장소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웰링턴 국립묘지도 물이 감아 도는 곳입니다. 대개 합수지역이 중요하고 명당입니다. 고대로부터 물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이런 지역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사람을 안정되게 합니다. 거친 분위기나 살기(殺氣)가 전혀 없습니다. 올림픽 개최지로 선택된 이유를 알만 합니다.”
 
신전이나 건축물 곳곳에 사자조형물이 있다. 동양식으로 하자면 용이나 호랑이 정도 되겠다. 동양에서 용과 호랑이라면 그에 대비되는 서양 동물은 바로 사자다. 사자가 있는 곳은 대개 권력이 있고, 물이 있다. 물은 황제의 권능만큼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는 동서양 막론하고 같은 이치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왕의 자리를 용상(龍床), 왕의 옷을 용포(龍袍),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등 용으로 상징되고 신의 자리엔 호랑이 형상이 있듯이, 서양에서는 신이나 황제근처엔 항상 사자가 위엄 있는 형상으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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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괴된 채로 남아 있는 제우스 신전 바로 뒤에 헤라 제단이 있다. 여기서 4년 마다 열리는 올림픽의 성화를 채화한다.

제우스신상이 바로 뒤에 헤라신전과 제단(Hera's Altar)이 있다. 이 헤라제단에서 최초의 올림픽 성화를 채화했다. 제우스신상이 있는 제우스신전, 헤라신전과 제단이 나란히 앞뒤로 있는 것이다. 태양으로부터 채화한 성화는 평화의 빛으로 올림픽 기간 내내 밝힌다. 하늘의 빛을 인간이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불로 만드는 장소가 바로 헤라제단이다.
 
헤라는 불의 여신으로, 자궁을 가지고 생명을 잉태해서 자손을 번식시키는 여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헤라신전 앞에서 성화를 채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대 사회는 자연과 더불어, 자연을 이용해서 사는 모습이 인간과 자연이 둘이 아니고 인간과 신이 둘이 아닌 모습이 동서양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경기에서 우승한 선수에겐 월계수관이 수여됐다. 월계수는 나무다. 지금의 올림픽에서 우승하면 엄청난 금액과 명예가 주어지지만 당시엔 명예뿐이었다. 이는 올림픽 자체가 고상한 정신적 세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비공식적으로 금전적 혜택이 있었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월계수관을 수여하는 게 전부였다. 고대 올림픽은 서기 400년 정도까지 계속됐지만 이후 중단됐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지만 대규모 지진 때문에 중단됐다는 주장이 중론이다. 이후 1896년 쿠베르탱에 의해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 올림픽이 부활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올림픽의 중심지가 올림피아에서 아테네로 옮겨간 것이다.
 
제우스신상은 고대사회 세계 7대 불가사의(seven wonders of the ancient world) 중의 하나다. 제우스상은 높이 약 12m의 목조로 건축된 것으로 전한다. 신전은 426년쯤 기독교의 신전 파괴령으로 부서졌으며, 6세기에 지진과 홍수로 땅속에 완전히 매몰됐다고 한다. 이후 19세기 초에 발굴이 시작됐고, 1950년 무렵에는 피디아스의 작업장이 발견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 조각가인 피디아스(Phidias)는 B.C 445년 제우스신상을 조각했다. 조각가로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 당시 ‘신들의 상 제작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는 제우스신상뿐만 아니라 ‘아테나 알레아’ ‘아테나 파르테노스’ 등 유명한 신상은 전부 만들었다. 전문가들은 그의 작품을 단순․명료하면서도 개개의 감정을 초월한 높은 정신세계를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참고로 고대사회 세계 7대 불가사의는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왕 피라미드, 메소포타미아 바빌론의 공중정원,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로스 능묘, 로도스의 크로이소스 대거상(大巨像),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파로스 등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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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의 영산 파르나소스 정상부에서 델피신전을 내려다봤다. 700m 정도의 고지에 좌청룡 우백호에 앞산까지 완벽한 지형을 갖춘 명당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올림픽에 대한 진한 여운을 뒤로 한 채 또 다른 유적지 ‘세계의 중심’으로 불리는 델피(Delphi)로 간다. 델피에 있는 파르나소스(Parnassos․2,200m)산은 고대 그리스에서 신들의 산 올림푸스 만큼이나 중요한 산이다. 올림푸스 산이 ‘신들의 놀이터’였다면, 델피는 하늘의 계시를 신들을 통해 받는 자리였다. 즉 신탁(神託)의 산이고, 종교적이자 영적(靈的)인 산이다. 신탁은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맡겨놓은 뜻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신이 맡겨놓은 뜻이라고 해서 신탁 또는 탁선이라고 한다. 맡겨놓은 그 자리가 아폴론 신전이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 음악의 신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운명을 점치는 예언의 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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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피신전에 있는 세계의 배꼽 자리인 옴파로스. 방문객들은 그 돌을 만지며 세계의 중심을 확인한다.

델피는 또한 ‘세계의 배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가 어느날 델피에서 독수리 두 마리를 각각 동쪽과 서쪽에 놓아주면서 세계의 중심을 향해 날려 보냈다. 그런데 두 마리가 델피에서 만났다. 그래서 제우스가 델피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했고, 두 독수리가 만난 지점을 돌멩이로 표시했다. 그리스인들은 그 돌을 ‘옴파로스(Ompharos․그리스어로 배꼽)’라 했으며, 그 주위에 신전을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델피 성역 내 옴파로스라는 돌이 있었고, 1913년 발굴됐다. 하지만 이후 도난당해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다. 현재 그 자리엔 모조품이 놓여 있다. 모조품에도 방문객들은 일제히 한 번 만져보고 지나간다. 세계의 중심에 섰다는 자부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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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델피신전에는 박물관뿐만 아니라 해설사도 상주하고 있어, 누구나 상주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신탁의 신전과 뒷산인 파르나소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델피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땅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 갖췄군요.” 땅에서 솟아나는 가스를 말한다. 고대 신탁사제, 즉 무녀(巫女)들은 이 가스냄새를 맡고 몽롱한 상태에서 접신을 했다고 전한다. 지금은 가스가 나오진 않지만 그 흔적은 어렴풋이 남아 있다.
 
파르나소스산(정상 봉우리는 키르피스․Kirfis) 앞 델피는 좌청룡 우백호에 앞산까지 갖춘 지형인 곳이다. 파르나소스 남쪽 산허리는 파이드리아데스(Phaidriades)라고 부르는 암벽이 반짝이고 있다. 일명 ‘빛나는 바위’라는 뜻이다. 남쪽에서 내리쬐는 햇빛이 이 절벽에 반사되어 성소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 암벽 산을 배경으로 프레이스토스 계곡을 거쳐 멀리 고린도만(灣)의 바다를 바라보는 절경을 이룬다. 왼쪽 봉우리는 에토스, 오른쪽은 킨토스, 앞산(안산)은 헬리콘이다. 그리고 헬리콘 맞은편 고린도만 방향으로 지오나(Giona) 산이 둘러싸고 있다. 헬리콘산은 우리나라의 지리산의 앞산에 해당하는 사성암이 있는 오산에 비유했다. 델피신전은 완벽한 요새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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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의 영산 파르나소스산이 델피신전을 배산으로 완벽하게 에워싸고 있다. 세계의 배꼽으로 불리는 델피신전에 세계 각국에서 방문객이 평일에도 끊이질 않는다.

“과연 명불허전입니다. 암벽 덩어리의 산이 사방으로 에워싼 형국에 있는 신전은 절터로서는 기막힌 자리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설악산의 봉정암을 연상케 하는군요. 봉정암은 우리나라 산신의 메카 아닙니까. 이런 곳에서는 특히 앞산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헬리콘이 앞에 턱하니 받쳐주어 키르피스에서 나온 기운이 흘러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신탁하는 자리로서는 최고의 명당입니다. 또 아폴론 신전을 기준으로 우백호가 매우 발달했습니다. 보통 우백호가 발달한 지형은 여자들의 기운이 센 터입니다. 신탁을 하는 사제가 여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녀(巫女)라고 하죠. 한 마디로 영발(靈發)로 여자들이 돈 버는 터입니다. 그 영기(靈氣)는 아직까지 보존된 듯합니다. 그대로 느껴집니다. 저 옆에는 ‘카스탈랴’라는 성수(聖水)가 있습니다. 무녀가 신탁하기 전 목욕재계 했던 곳입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돼 있습니다. 종교의 원형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자연과 인간이 교감을 느낄 수 있는 종교의 원형, 즉 영발이 그대로 살아 있는 영발의 메카 같은 곳입니다.”
 
보는 일행들은 감탄의 연속이다. 마치 우주의 기운이 뭉친 엑기스 덩어리라고까지 표현했다.
 
마침 고도기가 있어 고도를 확인했다. 해발 655m가 나왔다. 아니, 이럴 수가! 우연일까, 아니면 알고 했을까? 인간이 살기 가장 적합한 고도가 700m 전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기압과 저기압이 만나, 기압의 변화가 가장 적어 사람이 항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높이다. 가장 안정된 고도에, 좌청룡․우백호․남주작․북현무로 에워싸인 최적의 지형에 아폴론 신전이 자리 잡고 있다. 거기다 접신에 용이한 몽롱한 가스까지 분출되고, 성수까지 옆에 있는 이런 장소가 어디 있다 말인가. 정말 델피신전은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접신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어찌 접신이 안 되겠나.
 
아폴론 신전 위에는 그 높은 위치에도 불구하고 원형극장이 있다. 그리스에서 신전 다음으로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원형극장이다. 신전과 극장,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신전은 신과 통하는 자리고, 극장은 연극이나 노래 등 예술을 통해 정신을 정화시키는 기능을 합니다. 아마 고도의 정신작업으로 기력이 쇄진해지면 극장에서 요즘 말로 스트레스를 풀며 재충전하지 않았나 보여집니다.”
 
그럴 듯하게 해석한다. 더욱이 헬리콘 산에는 예술의 여신 9자매가 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델피 고고학박물관에도 뮤즈관이 있다. 뮤즈는 예술의 여신이다. 고대인들은 뮤즈를 무사(Musa)라 불렀다. 이는 ‘생각에 잠기다. 상상하다. 명상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통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자매 여신들이기 때문에 복수형으로 무사이(Musai)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술의 신과 신과 내통하는 무녀들이 함께 있는 델피 신전. 과연 아마추어가 봐도 명불허전이다. 물론 세계복합(문화+자연)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어서 고대 유적지가 아닌 중세 수도원이 있는 메테오라로 향했다. 메테오라는 그리스어로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이란 뜻이다.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깎아지른 듯한 봉우리 위에 세워져 있어 ‘하늘의 기둥’으로도 불리며, 14세기에 세워진 절벽 꼭대기의 수도원은 그리스 정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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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의 기둥이라 불리는 메테오라엔 기묘한 암벽 바위 위에 중세 수도원을 지어 수도사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수도생활을 했다.

“메테오라는 영적인 기도발을 받는 장소라기보다는 속세를 떠나 고통을 감내해 가며 수도하는 장소로 보입니다.” 기기묘묘하게 우뚝 솟은 암벽봉우리 위에 수도원을 지어 아슬아슬하게 수도하는 장소다. 정말 어떻게 그런 곳에 집을 지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전형적인 중세 건축양식으로 세계 10대 불가사의 건축물로 꼽힌다.
 
11세기 초부터 수도사들이 은둔하기 시작했으며, 14세기 초 성 아타나시우스가 최초로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6세기에는 20여개에 달했다. 현재는 수도원 5곳과 수녀원 1곳이 남아 있다. 그 중에 한 곳인 트리니티 수도원은 영화 007 시리즈 ‘포 유어 아이즈 온리(For yours eyes only)’를 촬영했다.
 
지질의 생긴 모양은 우리의 진안 마이산과 비슷하다. 약 6천만 년 전 지진활동으로 생겨난 거대한 잔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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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테오라 수도원 배경으로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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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갇혀 있던 감옥.

다시 고대 유적지이며, 세계문화유산 지정 1호인 아테네 파르테논(Parthenon)신전으로 간다. 유네스코 로고가 바로 파르테논 신전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그만큼 인류문화유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네의 정중앙 아크로폴리스에 우뚝 솟아 있다. 아크로폴리스에서는 아테네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은 페르시아 전쟁 승리를 기념해서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네여신에게 바치기 위해 BC 447~432년지 15년간에 걸쳐 지었다. 파르테논의 그리스어로 ‘처녀의 집’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가장 그리스적이며, 그리스 예술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의 상징이자 아테네 민주주의의 발상지이자 상징이기도 한 곳이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광장엔 평일에도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방문객들로 붐빈다. 한국인도 쉽게 마주친다. 주변 형세를 쭉 한 번 살펴본다.
 
“저 멀리 산(이미투, imitou)에서 내려온 혈이 아테네에서 한 번 뭉치고 다시 마지막으로 아레오파고스에서 뭉쳐 아크로폴리스에서 솟았습니다. 평지에서는 돌혈(突穴)이 명당입니다. 터는 반드시 물을 끼고 있어야 하는데, 바로 저 앞에 에게해 바다가 보이지 않습니까. 이 땅도 좋습니다. 델피가 한국의 해인사라면, 파르테논은 조계사에 가깝습니다. 해인사는 조금 신비스럽고 비밀스러운 데가 있는 반면 서울에 있는 조계사는 도심 한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기도발은 델피가 좋을 듯하네요. 바위가 치솟으면 화기(火氣)가 강하지만 이곳은 수기(水氣)가 섞여 있어 기운을 다스려줍니다. 화기는 반드시 물을 만나야 합니다. 이곳은 마치 한국의 해수관음처 같습니다. 명당은 명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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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도심에 우뚝 솟아 있는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요새가 마치 한국의 산성을 연상케 한다. 고대 아테네는 도시국가로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벽을 높이 쌓았다.
아크로폴리스 주변은 한국의 성벽과 같은 요새(fort, 要塞)다. 마치 철옹성 같다.
 
“신전이 이런 요새 위에 있다는 것은 종교적, 신성적 목적 외에 군사적 목적도 함께 띠고 있습니다. 외부 침입을 차단하면서 중앙에 우뚝 솟아 주변에 권력과 위력을 과시할 목적도 동시에 갖고 있는 거죠.” 설명이 끝나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가이드는 “파르테논 신전과 주변 신전을 에워싼 요새는 군사적 목적도 함께 띠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크로폴리스는 해발 156m에 돌출된 지형에 있으며, 삼면은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이루고 있고, 서쪽 한 면만 올라갈 수 있도록 돼 있다. 한 마디로 천연 요새 그 자체였다. 그리스의 요새와 한국의 산성이 비슷한 측면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였기 때문에 수시로 전쟁을 했다. 각 도시국가에서는 침입해오는 외부의 적으로부터 상시 방어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요새였다. 한국도 고대 사회에서는 부족국가로 유지됐었기 때문에 각 부족국가마다 방어진지는 산을 중심으로 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지금 그리스의 요새와 한국의 산성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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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은 지금 한창 복구 중이고, 그 앞에 세계 각국에서 온 방문객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아크로폴리스 위에 있는 신전들은 무너진 상태로 몇 세기를 보냈다. 지금 파르테논 신전은 한창 복구공사 중이다. 아테네의 운명과 같이 하는 듯했다. 4세기 후반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하자, 많은 그리스․로마의 신전들은 수난을 당하기 시작했다. 6세기에 파르테논은 기독교 교회당으로, 아테네 여신상은 성모 마리아상으로 바뀌기도 했다. 중세를 거치면서 수세기 동안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은 그리스는 신전들이 파괴되고 방치된 채로 근대를 맞았다. 19세기를 지나면서 본격 발굴과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온전하게 남은 건축물은 없지만 해마다 전 세계 방문객들이 몰려와서 고대 문명의 발상지를 확인하며 엄청난 돈을 뿌리고 간다. 선조들의 덕택에 후손들이 먹고 살고 있는 셈이다. 문명의 발상지로서의 자부심과 함께 무척 부럽게 보인다.
 
결론적으로 서양 문명의 발상지 그리스에서는 적어도 고대사회에서만큼은 동양의 문명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아니 한국의 고대문명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친숙한 그리스였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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