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때 경남 진주 집단학살 민간인 유골 64년만에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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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2-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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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집단학살된 경남 진주지역 민간인 유골 163구가 6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안치됐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희생자유족회(회장 강병현)는 19일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박물관 컨테이너에 임시 안치된 진주지역 민간인 유골들을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야산으로 옮겨 안치했다.

모두 163구의 유골을 차량에 실어 진주시 명석면 용산리 야산에 마련된 컨테이너로 옮겨와 임시 봉안했다.

유족회는 봉안제를 열고 "원통한 영혼들이 이제라도 편히 쉬시라"고 절을 올렸다.

이에 앞서 유족회는 유골들이 임시 안치됐던 경남대에서 고유제를 지내고 경남도청 앞에서 유가족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노제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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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회 정연조 사무국장은 "좌우 극한 이념의 틈바구니에서 억울하고 한 맺힌 영령들이 삼가 가시는 길 장애 없고 순탄하게 가시옵소서"라며 축문을 낭독했다.

유가족들은 찬 바닥에 엎드려 6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 영혼을 떠올리며 울음을 삼켰다.

강순연(67)씨는 "어머니께서 4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이렇게라도 돌아오는 모습을 못 보시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이날 안치된 유골들은 1950년 7월 국군이 보도연맹원으로 몰아 집단학살한 진주시 진성면과 일반성면 일대 주민 163명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4년 옛 마산시 진전면 여양리에서 발굴돼 경남대박물관 컨테이너에 임시 안치됐다.

2002년 태풍 '루사'로 산사태가 나면서 처음 발견된 유골들은 2004년 경남대박물관 이상길 교수팀이 본격적으로 발굴작업에 나서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러나 집단학살 사건의 정확한 진상과 책임소재 규명, 위령 사업과 배·보상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10년간 컨테이너에 방치됐다.

유족회와 진주시가 수년간 유골 이전을 논의해오다가 이번에 진주시 명석면 야산 소유자와 협의 끝에 유골들을 고향에 안치할 수 있게 됐다.

유골이 안치된 명석면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방첩대와 경찰에 의해 주민 수백 명이 희생돼 묻힌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오는 24일부터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민간인들의 유해 발굴작업도 진행된다.

민족문제연구소, 49통일평화재단, 한국전쟁유족회 등의 민간단체로 구성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지난 18일 공식출범을 선언한 이후 처음으로 이뤄지는 발굴사업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2009년에 한국전쟁 전후 진주형무소 재소자와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 사건 관련 희생자 유골 발굴작업을 경남대 이상길 교수팀에 의뢰했으나 당시에는 유골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 야산 소유자가 이 교수팀이 발굴한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유골이 묻혀 있다고 전하면서 진주 민간인 희생자유족회가 공동조사단에 발굴을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