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 물이 풀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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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3-03-18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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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호 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시인. 상담학박사)

대동강 물이 풀리면 분명 봄은 올 것이다. 그러면 자연은 변함없이 우리에게 꽃 선물을 줄 것이고 산천은 곳곳마다 꽃 대궐을 만들 것이다. 예전 노인들이 나이가 들면 먼 산의 꽃은 보이고 않고 꽃 위로 떠가는 구름만 보이더라고 하셨다. 그 노인들의 나이가 되어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참으로 묘해서 세상 이치와 문리를 터득하려면 터득할 세상 나이가 되어야 터득이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세상 시간은 참으로 빠르다. 젊은 날은 그렇게도 가지 않던 시간이 나이의 속도에 맞추어 가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100살이 넘은 어느 대학자는 그래도 매일의 삶이 즐겁다고 했다. 즐거운 세상 시계가 영원히 지속될 줄 알고 살아도 60이 지나면 어느 순간 그 착각에서 깨어나게 된다. 코비드의 잔재가 아직도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래도 올봄은 작년의 봄, 재작년 봄하고는 확실하게 다를 듯하다. 어느 해였든가? 막바지 추위가 찬 바람을 많이 머금던 날, 빙어잡이로 유명한 강원도 인제 강가로 갔다. 살기는 힘들어도 그나마 정들은 넘쳐났다. 전세 버스 두 대가 움직이는 큰 행사였다. 이른 시간 출발했지만, 강바닥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많은 사람이 얼음 바닥에 구멍을 뚫고 모두 신선의 즐거움을 누리는 웃음소리가 낭자했다. 

장년들의 여유라는 것이 결코 한가한 유람으로 보충되지 않는 법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둘 예약한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빙어회에 쏘가리와 잡어(雜魚) 매운탕으로 배를 채우고 거나해진 사람들이 놀이판을 시작했다. 그 사람 중에 누구 하나 그 병어회나 겨울 민물고기의 출처에 대해 묻지 않았다. 그리고는 놀이판에서 이긴 자들의 함성만 요란했다. 축제의 시간이 지나고 귀향할 무렵 쇠 갈라지는 엄청난 소리를 들였다.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음식점 주인이 얼음 갈라지는 소리라고 했다. 그 소리의 메아리가 마치 강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때는 대동강 물이 풀리면 저런 소리가 날까? 하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대동강이 풀리면 인제강의 얼음 갈라지는 소리보다 더 큰 소리가 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동강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나야 대동강이 풀린다고 했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올해는 인제 강 얼음 갈라지는 소리에 축제를 즐겼던 그때보다 대동강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더 좋은 징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올봄은 모든 사람의 가슴을 짓누르는 여러 가지가 두꺼운 얼음이 깨어지고 녹듯이 녹아 새로운 희망이 돼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희망으로 옷을 입고 희망으로 집을 지으며 사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다. 희망이 인생을 새롭게 하고 들뜨게 하고 즐겁게 한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고 가진 꿈들이 있다. 노년은 노년대로, 청년은 청년대로 희망이 있다. 햇볕 바라기를 하는 노인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는 것은 그분들만이 아는 희망의 웃음일 것이다. 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넘친다. 그 웃음 속에서 희망을 본다. 조잘거리며 지나가는 한 무리의 초등학생들에게서 무한한 희망이 보인다. 베이비세대가 다 떠나면 우리나라를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쓸데없는 생각이 앞설 때도 있다. 한 세대가 지나면 그 세대를 모르는 다음 세대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이 만나는 세상은 더 좋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노란 차 안에서 한 무더기 아이들이 내린다. 노란 가운을 단체복으로 맞추고 노란 모자를 씌운 아이들이 둘씩 손을 잡는다. 인솔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 선다. ‘짝꿍과 손을 꼭 잡고 따라서 오세요’ 재잘거리는 그들 소리 속에 새로운 꿈을 본다. 마치 개구리가 새 삶을 시작하려고 잰걸음으로 물가를 나온듯한 환영이 눈앞을 스친다. 그런데 저런 아이들이 아파트촌에서 점점 사라져 간다. 아기를 낳아야 할 2~30대들이 아기를 낳지 않으려고 한다. 아기 낳지 않는 젊은 부부들 사이에 웬 강아지는 그렇게 많은지 모를 일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사라진 아파트촌에 강아지 짖는 소리만 들린다면 30년 후 이 나라는 어떤 모습이 될까? 

봄이 문턱을 넘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올봄에는 그래도 봄 내음이 나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동강 물이 풀리면 마음이 싱숭생숭한 젊은이들이 짝을 찾는 유희들이 많이 펼쳐졌으면 한다. 그래서 많은 청춘 남녀들이 짝을 만나 시집, 장가를 가는 올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가정을 만들어 내년 이맘때는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넘쳐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삶은 해맑은 아기의 웃음에서 나온다. 생(生)과 사(死)는 공동체의 몫이다. 태어남과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망하는 공동체이고 사라지는 공동체이다. 부족 국가가 망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들이 사라지거나 문제 있는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옛날은 인구가 감소하면 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레밍의 법칙을 만들어 베이비 붐을 형성했다. 죽어야만 태어나는 것이 아닌데도 죽음과 태어남은 일직선에서 만난다. 태어남이 죽음으로 연결되어야 공동체가 건강해질 수 있다. 그래서 상례(掌禮)와 장례(葬禮)가 매우 중요하다. 장례로 돈을 벌고 싶으면 공동체의 태어남과 죽음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대동강 물이 풀리면 많은 노인이 육신을 벗을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갈 사람들이 가야 새 사람들도 오는 것이다. 이 봄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