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부(君師父)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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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3-08-12 18:31본문
박철호 한국CSF발전 연구원장(시인. 상담학박사)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듯한 말이다. 언제적 소리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른들의 말씀은 틀린 것이 별로 없다. 한쪽 사상으로 지나치게 경도된 어른들을 제외하고 보편적인 사고를 하는 어른들이 하는 말은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 말 속에서 지혜를 찾는다면 인생길을 살아가는데 많은 보탬이 될 것이다. 삼 형제의 중간인 60 후반이 70 중반의 형을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본다고 했다. 60 어간의 동생이 두 분 형님을 보면 자신이 살아갈 세월이 보인다고 했다.
조부모를 자주 만나는 아이는 사고하는 폭이 넓고 인성이 바르다고 한다. 조부모의 조부모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150년의 가정 이야기가 정체성을 만든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몇십 년 사이 급격하게 변한 탈가정화와 핵가족이 머지않아 심각한 문제들을 가져올 것이다. 70년 전 세계 최빈국의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지적 변화와 적응 속도의 간극이 너무나도 크게 벌어졌다. 그 간극을 메워 줄 교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일이 2023년 대한민국, 그것도 서울 강남에서 일어났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기가 가르치던 교실 옆의 부속실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교사가 교실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은 어떤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교육역사에서 영원히 기록될 일이다. 일반 사람들은 그 교사가 무엇 때문에 죽어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사별 상처와 치유에 관해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 선생님이 근무한 학교의 학생들에게 심각한 사별 상처로 남게 될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특히 담임을 맡은 아이들은 평생 사별 상처를 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그중에도 일부 예민한 아이들은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될 것이다. 대개 사회적인 적개심을 품고 살인하거나 범죄하는 사람의 상담기록을 보면 사별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사별 상처는 내면적인 요인이기에 밖으로 표출되면 엄청난 후유증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죽음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승화시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 그것이 전통적인 상장례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의식이었다.
군사부일체는 임금과 부모와 스승에 대한 존경의 강도를 하나로 두었다. 임금은 나라를 상징한다. 부모는 자기의 근본이다. 스승은 인간이 되게 만들어 준 분이다. 이 말을 다르게 해석하면 나를 나다운 존재로 만들어 준 근본에 대해서 고민하라는 말이다. 그런 연유로 임금도 자기 스승은 함부로 하지 못했다.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말라고 했다. 스승이 존경의 대상이 될 때 훌륭한 제자들이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조롱거리가 반역과 패륜과 스승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조상들은 나라와 가정과 사회를 지켜왔다.
그런데 별 희한한 광경을 목격한다. 학부모가 선생을 조롱하고 교육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교육을 농단한다. 지나치게 경도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용납되지 않는 교육행정을 펼치고 있다. 과거 경기도 어느 교육감이 학생 인권조례를 제정해야 한다고 설칠 때 같은 부류의 교사들이 학생 인권조례 제정에 앞장섰다. 정권의 뒷배를 가진 도 의회가 조례를 만들었다. 학생 인권조례가 무엇인지 모르는 학부모를 가붕개(가제, 붕어, 개구리)로 생각한 경도된 교육감들이 당선된 지역은 그들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해괴한 학생 인권조례가 지방의회를 통과했다.
그 당시 일반 교사나 교육계의 어른들은 사라지고 지나치게 경도된 사람들이 10년 후를 예측하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후 나타난 결과가 교권을 망치고 학교를 망쳤다. 잘못되었다면 지금부터라도 대대적인 손질을 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백년대계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방안은 멀리 바라보고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충분한 연구와 고민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선생이 학생을 책임지는 것이고 스승이 존경받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960~70년대의 선생이 아니라 국가적인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소임을 감당할 선생님들이 많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조선은 10명 중 9명이 글자를 몰랐다. 해방 무렵 80%가 문맹자라고 했다. 6.25가 지난 다음 문맹자 퇴치 운동의 목적으로 전국에 사립 중고등학교 열풍이 불었다. 60~70년대에 벌어진 그 열풍에 참여한 교사들은 교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엉터리들이 엄청났다. 초등학교 선생을 하다가 전공과목이 뭔지도 모른 체 중고등학교 교사가 된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사범대학을 나오면 무조건 선생이 되었다. 선생도 아닌 자들이 선생님 흉내를 내려고 하니 거짓 선생들이 판을 쳤다. 그 시절 선생님은 학생에게 왕이었습니다. 못된 선생이 한둘이 아니었고 노름꾼에, 중독자도 많았다. 밤새도록 놀음판에 있다가 출근해서 온종일 숙직실에서 잠만 자고 퇴근하던 선생도 있었다. 아이들을 유별나게 패든 선생도 있었고 가정불화 분풀이 대상으로 여겼던 선생도 있었다. 학부모는 그런 선생을 아이 맡긴 채무자 심정으로 존경했다. 그런 선생 밑에서 자란 아이들도 제값을 하면서 살아왔었다.
국가 경영을 책임 맡은 자들이 본보기가 되지 못하고 선생이 선생답지 못하고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면 다음 세대들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들을 맡겼으면 아이들을 잘 훈육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해야 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참 스승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군사부일체가 국사부(國師父)일체로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