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亂場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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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2-07-2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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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박철호(시인. 상담학박사)

1960년대만 해도 시골의 오일장은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다. 당시 초등학교는 대개 5개 마을에서 7~8개 마을 아이들이 모였는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700명이 넘었다. 그러니 엄청난 미래세대들이 모인 것이다. 그 당시 오일장이 열리면 장이 열리는 소재지에서 20여 리가 떨어진 곳은 날이 밝기도 전인 인시(寅時)부터 시장 갈 준비를 했다. 돈 될 푸성귀를 자루에다 담고 쌀도 두어 말 돈으로 바꿀 준비를 했다. 돈 될만한 잡곡들도 몇 됫박 챙겼다. 

그리고는 장날 꼭두새벽부터 이고지고 장터로 향한다. 점포를 가진 상인들은 대처에서 받아 온 물건을 소달구지에 실어 일찍 보내고 한 시간마다 다니던 탈탈이 버스를 타고 장으로 간다. 먼동이 터고 해가 밝아오면 장터로 사람이 모인다. 목 좋은 자리에 가져온 온 물건을 팔 준비를 하면 8시부터 장이 서기 시작한다. 9-10시가 지나면 오전 장이 한판 지나간다. 

그러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자릿세를 받는 장세 쟁의가 돈 자루를 차고 다니면서 장마당 자릿세를 달라고 한다. 늦게 온 사람은 마수걸이도 못 했다고 실랑이를 벌여도 장세 쟁이는 기어코 장세를 받아야 한다며 서슬이 퍼레져 난리를 피운다. 일찍 판을 깐 사람은 장세 쟁이가 돌기 전에 물건을 다 팔고 자리를 뜨지만 늦게 온 사람들은 판도 깔기 전에 자릿세부터 주어야 할 판이었다. 오일장은 조선 후기부터 있었다. 그때는 유통개념보다 물물 교환 용도의 농민 시장이었다. 그들이 물건을 거래하는 곳을 장마당이라고 했다. 이 장마당은 나루터나 산판이 열리는 곳, 어장막이 형성되어 고깃배가 들어오는 항구 주변에 번성했다. 이미 고시가 되어 무역선들이 드나드는 항구나 나루터는 장마당이 있었다. 조선 말기는 광석을 캐던 금광 주변에도 장마당이 섰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돈이 모이게 되어 주막이 생기고 주막이 생기면 어김없이 구실아치들의 놀이판이 되었다. 구실아치의 우두머리는 호장이라는 세습직 토호였다. 그들은 그 당시 실정에 맞는 고금리의 노름빚을 빌려주기도 하고 거간꾼 형세를 하면서 자기들의 잇속을 챙겼다. 그런데도 조선의 물품 유통의 주 거래는 보부상들 몫이었다.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넘어감으로 장마당의 형태도 바뀌었다. 일본 제국이 만든 신문물 보급 정책으로 인위적인 상설 시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반대로 장마당은 더욱 크게 번성하고 발전되어 오일장, 삼일장이라는 이름으로 안착되었다. 해방을 지나고 6.25를 지난 다음에는 이 오일장이 관청 주도로 이어졌다. 1960년대 오일장의 자릿세인 장세는 지역 발전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조선 시대의 호장과 같은 거간꾼이 지방 조직의 말단인 면장과 협의하여 면 직원들의 쌈짓돈처럼 쓰였다. 장세를 받는 사람은 면장과 친한 거간꾼의 하수인으로 일정의 실비를 주고 자릿세를 받는 역할을 했다. 이들의 농간은 진짜 가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먹이 사슬이 형성되어 장세 쟁의 몇 년이면 집이 한 채, 거간꾼 몇 년이면 논이 몇 마지기라고 했다. 장마당의 자릿세가 엄청난 부조리를 생산하는 준조세가 되다 보니 1970년대 중반부터는 사라지게 되었다. 문제는 이런 난장판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난장은 사람들이 떠들거나 뒤엉켜 뒤죽박죽이 된 곳을 말한다. 조선 시대 과거를 보는 과거장에서 선비들이 질서 없이 들끓어 떠들어 대던 과거(科擧)판이 난장판의 어원이라고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글깨나 알고 힘깨나 쓰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일수록 난장판이 만들어진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모양인가 보다. 

난장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국회가 생각나고 정치판이 생각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뒤죽박죽 난장판을 만들면서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는 그들이 국민의 수준이라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정권이 바뀌면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작금의 상황들을 보면 귀가 막힐 뿐이다. 전 정권이나 현 정권이나 변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비빌 언덕 없는 소외되고 힘들어 낙심된 사람들은 누구를 바라보아야 한단 말인가? 걱정 아닌 걱정거리들이 오프라인, 온라인을 뒤덮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는 더 큰 문제다. 취지 좋은 지방자치제가 8기, 9기를 지나면서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지금의 전국은 개발을 빙자한 난장판이다. 엄청난 공사판이 벌어지다 보니 그 판이 난장판이 되고 있다.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은 그 지역에서 왕보다 센 권력을 가진다. 민선 시장, 군수, 구청장이 왕 중의 왕이 되어 그들의 천하가 펼쳐진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는 토지 수용 설계비로 100억이 들었다고 한다. 8-90억은 보통이다. 무슨 설계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는 이익환수금이 몇천억, 몇조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 곳에는 전직 고위 공직자, 전직 국회의원이 호장(戶長)이 되어 거간꾼이 된다. 실무 주역이 그들의 아바타인 지방자치단체장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니 개발 계획선도 그들 입맛대로 그어진다. 더 놀라운 것은 기초자치단체 의원들이 구실아치라고 하니 참으로 귀 막힌 조선의 난장판이 아닐 수가 없다. 그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 평생 먹을거리를 만들고 자식 대까지 주고도 남을 돈을 긁어모은다는 소리도 들린다. 

2~30년 후에 개발해도 될 곳까지 공사판을 만들려고 한다. 무엇이 그렇게 바쁜지, 현 지방자치단체장이 다 해야 할 기세다. 그들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펼치는 난장판을 자세히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난장판을 누가 만드는지, 새 정부는 두 눈을 부릅뜨고 살펴서 엄벌해야 할 것이다. 21세기 개명 천지의 세상에 아직도 조선 시대의 구실아치가 판치고 거간꾼이 설친다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