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것 없는 새해와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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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2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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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죽음준비교육강사, 호원대 강사)
 
대망의 새해가 열리고 새로운 천년의 출발을 기념하면서 새벽의 종로거리를 껑충껑충 뛰어보던 때가 벌써 10년을 넘기고 있다. 시간이 가고 오는 것이 쉬임이 없는데 우리는 굳이 헌것과 새것을 구별하고 새것에 의미를 두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새해가 되자마자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2010년 1월 7일에 MBC방송국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무엇에 데인 것처럼 뜨거워짐을 느끼면서 처음 나온 말이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이 무슨 방송에 나가요”였다. 하지만 작가와 프로듀서는 그 날 당장 나를 찾아왔고 자초지종은 이러했다.

생긴 지 두어 달 밖에 안 된 프로그램에 적당한 출연자를 찾고 있는데 인터넷에서 나의 인터뷰기사를 보게 되어서 연락을 하였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작년 장마가 한 창이던 8월말에 ‘머니투데이’라는 경제지에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났다. 그렇지만 그 때의 내 생각은 인터뷰를 했다고 다 실어주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 기사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오후에 만난 작가가 인쇄해서 가지고 온 것은 틀림없는 내 인터뷰 기사였다. 사진도 예쁘게 잘 나와 있었다. 그날 당장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나는 한 가지 요구를 전달했다.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 중심이기보다는 호스피스와 사별, 그리고 유족들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사별로 인한 슬픔은 이제 사회적으로 다루어져야 하는 분야이고, 주위에서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사별에는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일임을 알리고 싶었다.

내가 사별로 인해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때 누군가가 옆에서 도움을 주고 알려주기라도 했더라면 그렇게 길고 긴 터널을 힘들게 지나오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별로 인한 슬픔은 누구나 겪는 일이니 아무렇지 않게 넘겨도 되는 일이 아니다.

사별슬픔이 잘 해소가 되어지지 못하면 병적인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신체증상이 나타나기까지 하는 것이다. 나의 이런 요청에 작가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내가 이야기를 끌어가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마치 오래 만난 사람들처럼 우리는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후 두어 번의 만남으로 방송분량을 찍고 1월 25일에 내 이야기가 방송 되었다.

한 사람이라도 희망과 용기를 가졌으면 하는 나의 바람대로 연락을 해 오신 분이 계셨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직도 사별슬픔으로 인해서 울고만 계셨다. 일단 만나기로 했다. 만남에서 어떤 식으로든 치유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므로. 전화기를 통해서 들려오는 울음은 십 여 년전 나의 울음에 다름 아니었다.

나도 그 어이없는 사별 앞에서 그저 울기만 했었다. 그 분이 사별을 인정하고 지금 살아가는 삶을 수용함으로써 앞으로 사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날이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금 최고의 흥행을 누리고 있는 영화는 아바타이다. 제작자의 열정이 녹아있는 영화는 보는 이들에게도 감동을 넘어서서 몰입하게 만들고 화인을 남기는 것이다.

아바타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에는 그저 ‘아이들이 만화영화 보듯이 보겠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겨울방학을 겨냥해서 개봉을 했고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서 부모들이 함께 보러 가도 그저 꾸벅꾸벅 졸다가 아이들 손을 잡고 영화관을 나오겠거니 했었다.

천만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도 별 감흥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국내영화도 천만관객을 너끈히 넘기는 게 예사인데 뭐 그러저그렇겠지 생각하였다. 우리집도 학생이 있고, 그 학생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니 이 영화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핑계로 일단 보기로 하였다.

1월이 지나면 종영이 될 것 같아서 밤9시 55분에 시작하는 티켓을 예매해서 별로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딸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본 영화 상영전의 광고가 지루하게 느껴지고, 차기 상영작의 예고가 따분함을 더해 주더니 드디어 시작되는 아바타.

그런데 이 영화 아바타는 나를 꼼짝 못하게 잡아 두었다. 3시간여가 걸리는 상영시간 내내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몰입하게 만들었고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고, 가슴 뛰는 흥분을 선물해 주었다. 나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이 여지없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생각이 들 틈을 주지 않고 달려 온 아바타와의 달리기는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 주었다. 새벽 1시가 다되어서 끝날 때까지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치고나서도 쉽게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자막이 올라가는 동안 흘러나오는 음악도 여운을 폭발시켜주었다.

 우리는 우리의 아바타를 꿈꾼다. 하지만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자하는 것이 아바타를 꿈꾸는 목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나비국의 신처럼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공정한 신이 필요하고, 나의 아바타도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는 아바타이어야 한다.

나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아바타는 누구에게라도 공정한 아바타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아바타를 꿈꾸는 자는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영화의 주인공 제이크는 현실에서는 다리를 쓰지 못하지만 아바타는 달리는 것 뿐 아니라, 날기까지 한다.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자신의 순수성을 잃기 쉬운 것이 또한 인간이지만 제이크는 끝까지 자신의 순수를 잃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내 안에 만들어져 있는 아바타, 나와 함께 동행하는 아바타는 무한능력을 가지고 있다. 내 안의 순수 아바타를 드러내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새로울 것이 없는 새해이지만 다시 새로이 각오를 다지고, 또 새로이 희망을 이야기하는 호스피스가 되기를 소망해보는 새해 새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