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은 결코 용감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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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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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를 과시하고 뽐내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 영향을 유학자들에게서 보는 경향이 있다. 불교의 나라 고려는 후반기에 다다르면서 탐욕스러운 신앙으로 바뀌고 내세 신앙인 미륵불 사상으로 연결되어 말세의 징조를 보였다. 신돈이 나타나고 고려가 망할 때쯤에는 조정의 모든 대신과 지방 토호세력, 심지어는 지방 관리들까지도 모두 승려화가 되어 갔다. 고려시대의 사내들은 낮이나 밤이나 불교에 심취하여 심지어 자식을 낳는 일까지도 팽개쳐버려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하게 되었다. 이런 영향의 이면에는 아기를 낳고 싶은 여자들의 공공연한 간통과 대를 잇기 위한 사통이 활발하게 전개되어 인륜 경시풍조 까지 일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간통과 사통의 문제는 승려와 일반인들, 심지어는 궁궐의 내명부까지 영향을 주어 심각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하게 된다.  

성리학과 주자학의 명분을 이어온 고려 후기 유학자 층도 이런 엄청난 종교의 타락상과 비인륜적, 비도덕적 행위에 대해 막을 길이 없어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 영향은 많은 유학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질서의 변화가 와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리고는 그 새로운 변화가 역성혁명으로 이어진다. 그 역성혁명이 조선의 건국이다. 역성혁명으로 건국된 조선은 숭유억불로 새로운 양태의 도덕정치를 표방하게 된다. 유학의 나라 조선이 도입한 이 유학정치가 일반 민중에게로 온전히 들어간 시기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고 난 다음이었다. 무수한 전쟁고아와 미망인에 대한 처리 문제는 축첩과 서자를 허용하는 고도로 계산된 유학통치 이념을 가미한 조정의 정책으로 막을 내린다.

그 후 일반인들에게까지 파고든 유학사상의 변종은 거들먹거리는 유세정치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 전형적인 풍자가 양반걸음이다. 그러나 작금에 와서 이 양반걸음이 서양 건강학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빠른 걸음보다 좋다는 연구발표가 속속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 양반걸음이 어느 순간부터 자기 과시용으로 바뀌었다. 그런 심성 저변에는 못 먹어도 고를 외치고 사글세 단칸방에 살아도 자가용을 끌어야 직성이 풀리는 묘한 심리구조로 변했다. 이런 영향은 내실보다 외형을 따지게 되고 옷 잘 입은 사람이 대우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돈만 있으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된다는 묘한 풍조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중의 하나가 조상 산소에 비석을 세우는 일이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울방향으로 화성 휴게소를 지나고 500m 우측에 보면 갓 쓴 비석 군이 나타난다. 왜 갓 쓴 비석 군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CSF판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참 가관이다. 우리 조상들이 주창한 풍수사상은 허한 곳은 보하고 실한 곳은 낮추는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비석은 세우는 곳이 있고 세우지 않는 곳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속도로 주변의 모든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운다. 어디 그 뿐인가? 갓 비석을 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갓 비석은 벼슬한 사람 앞에 세운다는 속설과 함께 벼슬하지 않은 사람 앞에 세우면 멸문을 당한다는 말도 있다. 풍수지리상 세우지 말아야 할 곳에 세우면 화를 입는다는 말일 것이다.

그 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비석 앞에 쓰는 글자이다. 조선 중후반기 벼슬이름 중에서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折衝將軍行龍驤衛副護軍)이라는 직책이 있었다. 절충장군은 무관직책 중에서 제일 상위의 직급이다. 부호군은 무관직의 문관으로 지방 호족이나 양반 중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에게 내렸던 벼슬로 보인다. 그런데 비석을 세우면서 한문으로 절충을 ‘切忠’으로 쓰고 용양위를 ‘龍讓偉’로 쓴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어디 그뿐이랴? 장례식장에서 쓰는 권사라는 직책도 勸士, 勸師, 勸事라는 한문이 있다. 그럼에도 그 한문의 용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쓰고 있다는 것이다. 한문으로 쓰는 단어는 그 용도가 맞아야 하고 정확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단어의 용도나 용어조차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어찌 전문적인 비석 쟁이, 장례지도사, 장례식장 운영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쟁이는 전문가에게만 붙일 수 있고 지도사는 전문가에게만 쓸 수 있다.

아무리 세상이 좋아져서 인터넷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전문가는 전문가다워야 하고 쟁이는 쟁이다워야 할 것이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 흉내를 낸다면 그 자는 사이비이거나 돈에 눈이 먼 사람이거나 거들먹거리는 사람일 것이다.

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박철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