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화환 대신 기부화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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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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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 부친상 때문에 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다가 장례식장 뒤편에 버려진, 채 시들지 않은, 생생한 조화 무더기를 목격했다. 버려지는 조화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씁쓸한 마음과 함께 아직도 우리 사회에 명분을 위한 낭비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례식장에 보내지는 조화 중 일부만이 빈소에 놓이고, 대부분은 폐기처분되는 것이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빈소 공간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보낸 사람 성의를 고려해 조화에 걸려 있는 리본 이름표만 걸어두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됐다.

보내는 사람도 이를 모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체면과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에서 화환을 보내는 것이 받는 사람에게 성의를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버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화환을 전달한다.

혹자는 조문을 위한 조화의 꽃은 폐기처분되고 리본에 적힌 이름만 남는다는 것에 대해 주객전도식 ‘리본전시 문화’라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리본전시 문화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 문화를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전 및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핵심은 양쪽 다 성의와 예의를 표하기 위한 방안으로 화환을 보내거나 혹은 화환을 버리고 ‘이름표만 전시한다’는 것이다. 결국 양자 모두 성의와 예의 표시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시행할 수 있는 대안이 있다면 누구나 그 대안을 받아들이는 데 망설임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화로 버려지는 돈으로 예의는 갖추면서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현재의 경조화환을 기부화환으로 바꾸는 캠페인을 추진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 생각된다. 보내는 사람은 경조화환의 금액을 모두 지불하지만, 받는 사람은 화환은 제외하고 경조어가 적힌 이름표만 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내는 사람이 지불한 금액은 자동으로 고인이나 상주가 원하는 단체나 불우 이웃에 기부되도록 하는 것이다. 멀쩡한 화환이 폐기처분 운명을 맞지 않아도 된다. 화환을 보내는 사람 입장에서 어차피 나갈 돈이 사회적으로 도움되는 곳에 쓰이니, 똑같이 돈 쓰고도 기분이 더 좋을 테다.

그뿐인가.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자리만 차지해 골칫덩어리인 화환을 받는 대신 고인 이름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의미 있는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소수 인원이 참여하고 있는 ‘경조쌀 보내기 운동’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경조쌀 보내기 운동에는 일부 정재계 인사들과 연예인들이 동참하고 있다.

경조쌀 보내기 운동이란 결혼식, 장례식, 기념식 등 각종 경조사에 경조화환을 보낼 때 간단한 꽃바구니와 함께 쌀을 보내는 캠페인이다. 이 역시 버려지는 화환은 줄고 쌀은 어려운 이웃에게 전달되는, 일석이조다.

쌀이든 돈이든 기부되는 수단이 무엇인가는 그리 중요치 않다. 명분을 지키기 위해 낭비되는 돈으로 저소득 계층 아이가 양질의 교육을 받거나, 의료 소외자에게 무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만족할 일이 아닌가.

‘매칭그랜트(임직원이 내는 기부금만큼 기업에서도 후원금을 내는 제도)’ ‘판매금액 1% 기부’ ‘자선냄비’ 등 찬바람이 불고 연말이 다가오자 곳곳에서 따뜻한 온정을 나누는 기부 행사가 눈에 띈다. 그러나 대부분 연말에 집중되는 일회성 행사들이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기부 행사가 아니라 생활 속에 자리 잡은 기부문화가 뿌리내릴 날을 기대해 본다.

[엄주혁 엑세스커뮤니케이션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