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이곳이 ’운석 장면 총리’ 사시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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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4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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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구청장 김충용)는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지정 돼있는 운석(雲石) 장 면(張 勉)총리 가옥을 매입한다.

근대 문화․역사적 인물의 발자취가 남아있고 1930년대 주거양식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는 점 등 귀중한 가치가 있는 ‘운석 장면총리 가옥’을 매입하여 근대문화유산의 원형보존과 문화공간으로 활용 하고, 또한 현재 소유자가 문화재 등록으로 인해 받게 될 여러 가지 재산상 제한에 따른 손해를 미리 방지 할 수 있다
종로구 순교방길 2(명륜1가동)에 소재하고 있는 현 가옥은 1930년에 지어 졌으며, 토지면적은 403.3㎡이고 건물은 주택 4동에 지상, 지하 각 1층으로 연면적 165.29㎡이다.

문화재적 보존가치로는 지난 1937년부터 운석 장면(1899~1966)총리가 거주하였고 안채, 사랑채, 사용인실, 경호원실이 한식과 일식 그리고 서양식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양식이 원형대로 잘 남아있다, 또한 장면이라는 역사적인물의 발자취가 남아 있고, 1930년대 주거양식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건축물이라는 점이다.

이번 가옥 매입을 위해 총 20억원(국비 10억, 시비 10억)이 들었으며 지난 4월부터 매입을 추진하여 이달말까지 소유권 이전을 마칠 예정이다.

종로구는 앞으로 이 가옥을 주요역사문화인물의 주요 활동공간이라는 점을 활용하여 다른 근대문화유산과 연계해 새로운 고부가가치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근대문화유산의 현장 체험 공간으로 활용 할 것이라고 밝혔다.

〔운석(雲石) 장 면(張 勉) 총리 약력 〕
ꏚ 생몰년대 : 1899 ~ 1966
ꏚ 약 력
○ 1899년 : 인천 출생
○ 1817년 : 수원고등농림학교 졸업
○ 1919년 : 기독교청년회(YMCA) 영어학교 졸업
○ 1925년 : 미국 맨해튼 가톨릭대학 문과(文科)를 졸업
○ 1948년 : 맨해튼 가톨릭대학, 영국 포덤대학 법학박사학위 받음
○ 1957년 : 미국 시턴홀대학교 법학박사학위 받음
ꏚ 주요활동
○ 192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천주교 평양교구 설정을 위한 재단사무를 보는 한편, 메리놀 외방전교회 신부들에게 한국어와 풍습을 가르쳤다.

○ 1927년 평양교구 설정과 함께 평양으로 이주하여 교회일을 돌보았다.

○ 1931년 서울 동성상업학교 교장에 취임하여 1945년 8·15해방이 될 때까지 교육자로 활동했다.

○ 1946년 정계에 투신하여 남조선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남조선과도 입법의원 등을 지냈다.

○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같은 해 겨울 파리에서 열린 제3차 국제연합(UN) 총회에 한국 수석대표로 참석하여 대한민국이 국제적 승인을 얻는 데 기여했다. 이어 대통령 특사로 교황청을 방문
○ 1949년 초대 주미대사로 부임하여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
○ 1951년 제2대 국무총리로 발탁되었으나 이듬해 사임했다. 이후 원내 자유당 인사들이 이승만을 대신할 제2대 대통령후보로 추대하면서부터 반(反)이승만 대열에 가담했으나, 발췌개헌안이 통과되고 추대 움직임이 수포로 돌아감으로써 야인(野人)으로 돌아갔다.

○1955년 신익희 등과 민주당을 조직하여 자유당 독재정권과의 투쟁에 앞장섰으며, 같은 해 민주당의 민주국민당계(구파)를 대표하는 신익희·조병옥과 대비되는 흥사단 중심의 비민주국민당계(신파)의 지도자로 추대 되어 민주당의 최고위원이 되었다.

○ 1956년 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같은 해 9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저격을 당했으나 경상에 그쳤다.

○ 1959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에 피선되었고,
○ 1960년 조병옥의 러닝 메이트로 부통령에 입후보했지만 낙선했다. 같은 해 4·19혁명으로 자유당정권이 무너지자 제5대 민의원을 거쳐 내각책임제하의 제2공화국 국무총리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국민의 자유 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정책을 지켜나갔다. 그러나 첨예한 정쟁과 우유부단한 지도력이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로 이어지면서 1961년 5·16군사정변이 일어나자 총리 취임 9개월 만에 정계에서 물러났다.

○ 그후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활동을 금지당했고, 한때 이주당(二主黨)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으나, 석방된 후 종교생활에 전념하다가 1966년 간염으로 죽었다.

○ 장례는 국민장으로 거행되었으며 경기도 포천의 가톨릭교 묘지에 안장
○ 1951년 로마 교황청 훈장을 받았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