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 석탑속에 유물 잔뜩‥"백제지역 최대 고고학적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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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6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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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1호인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안에서 백제 서동왕자(580 ~ 641)와 결혼한 신라 선화공주(? ~?)가 백제 왕실의 안녕을 빌며 만든 사리장엄(舍利莊嚴)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는 19일 금제 사리호(金製舍利壺), 금제사리 봉안기(奉安記), 은제 관식(銀製冠飾) 등 유물 500여점을 공개했다.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 정비하려고 해체하던 중 심주(心柱) 상면(上面) 중앙의 사리공(舍利孔)에서 수습한 유물들이다.

금제사리봉안기는 가로 15.5㎝, 세로 10.5㎝ 크기의 금판에 음각하고 주칠(朱漆)해 글씨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백제의 왕후가 된 선화공주가 재물을 희사해 가람을 창건하고 기해년(639)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금석문은 미륵사의 창건목적과 시주(施主), 석탑의 건립연대 등을 정확히 밝힘으로써 문헌사 연구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높이 13㎝, 어깨 폭 7.7㎝의 작은 병 금제사리호는 보주형(寶柱形) 뚜껑을 덮고 있었다. ×선으로 내부를 투시한 결과 내외함(內外函)의 2중 구조로 이뤄져 있음을 확인했다. 사리호 표면의 다양한 문양과 세공기법은 백제 금속공예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문화재청은 “미륵사지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은 다른 사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종류가 일괄로 출토됐고 가공수법도 정교하고 세련돼 국보급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국보급 유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사리장엄의 발견으로 미륵사 창건에 관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이 입증됐고 백제석탑의 사리봉안 기법과 의례를 새로이 밝힐 수 있게 되었으며 매납(埋納)된 유물의 절대연대 확정을 통해 동시기 유물의 편년(編年)이 가능해졌다”면서 “이번 조사는 무령왕릉 발굴과 능산리 금동대향로 조사 이래 백제지역 최대의 고고학적 성과로 판단된다. 이를 바탕으로 백제문화 연구는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