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굴이 불가능한 조선 왕릉, 과연 어떻게 만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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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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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1월. 서오릉 경내에 있는 명종의 원자 부부의 무덤인 순창원에 도굴 시도가 있었다. 도굴범들이 봉분 뒤편을 파내려간 것이다. 그러나 도굴범들은 무덤 속에 있던 단단한 층에 가로막혀 실패한다. 도굴이 불가능한 조선 왕릉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KBS1 TV는 7일 오후 8시10분 역사추적 '조선 왕릉의 비밀'을 방송한다. 27명의 왕과 그들의 왕비가 모셔져 있는 조선 왕릉은 모두 42기다. 승하한 왕의 유해가 왕릉에 안치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무려 다섯 달. 왕의 장례인 국장은 그 절차만 총 69개에 달할 정도로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 중에는 시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얼음을 이용해서 빙반(氷盤)을 설치하는 것이 있는가 하면, 무려 90벌의 옷을 입힌 대렴(大斂)도 있다. 이러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왕릉도 엄격한 국장 예법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 국장제도를 완비한 이가 제 3대 왕, 태종이다.

그렇다면 태종의 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기록에 의거해 태종의 능 내부모습을 복원해 보았다. 그 결과, 석실의 덮개돌 무게만 무려 50톤이 넘었다. 어마어마한 돌을 캐고 다듬어서 능까지 운반하는데 엄청난 공력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42기의 조선 왕릉은 모두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