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햇볕처럼 밝게하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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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6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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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인간으로서의 시인이 시를 쓰면서 부닥친 첫번째 고민은 존재의 희망과 절망이란 문제이다. 사랑은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다. 그래서 사랑은 삶에 있어 희망이다. 그런데 죽음은 미래가 없다. 내일이 없다. 절망, 그 자체이다. 사랑을 하면 내일이 예비 되지만, 죽음이 찾아오면 그 순간 모든 게 끝이다. 그래서 나의 시어는 희망으로서의 사랑과 절망으로서의 죽음을 양손에 맞잡고 서 있는 허수아비 같은 것이다.

시인에게도 필히 존재하는 죽음

시인에게도 죽음은 필히 존재한다. 죽지 않는 시인이 이 세상에 있었는가? 필자는 “상처”라는 시에서 죽음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만나도 만나도 그리움이란 항아리를 채울 수 없어/매일 만났던 정들었던 사람이/어느 날부터 만나지 못하는 아니, 만날 수 없는/죽음이란, 또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떠났다.//삶과 죽음은 늘 맞붙어 사는 이웃 같은 것//장례식 날/사랑했던 이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장지엘 따라 가지 않았다./길바닥에 앉아 헤어짐에서 오는 슬픔을 눈물로만 닦아냈다.//어딘가에 살아 있으나 만날 수 없는 사이라고/내가 날 속이기로 했다./그러나 내가 날 속인다고 속여지지 않았다.//생각이 날 때면 너무 그리워/강변에 선 서리 맞은 코스모스 대들이 바람에 부딪치며/까시락 까시락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내 가슴을 후볐다.//죽음이 가져다준 이별이 덧난 상처 되어/쓰리고, 꼭꼭 찔리는 아픔으로 변해/보고픔이 더해갔다.//죽음이 나와 친구하는 날/사랑이 남긴 길고 긴 고통이 끝날까.”

죽음은 인간 육체의 동작이 완전히 정지되는 것을 말한다. 그 정지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것도 시인의 고민이었다. 시 “희망”에서 이 점을 들여다봤다. 다음은 이 시의 전문이다.

“태어남이 처음의 자연스러움이라면/죽음은 마지막으로 장엄한 자연스러움이다.//벽제 서울시립장제장을 취재하다가/화구를 볼 수 있었다./죽은 사람들의 시신이 고열로 타고 있는/모습을 직접 보았다.//화장터 굴뚝에선/희부연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육신이 그렇게 하늘로 증발하고 있었다.//죽음은 길고 긴 이별이라는데 충격을 받아/며칠간 열병을 앓았다.//아끼던 몸뚱이가 무(無)로 변하는 현장에서/삶의 끝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허무감을 느꼈고/어찌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모든 것을 부정해 버리고 싶었다.//누구나 죽으면 한조각 구름으로 변해/육신은 일순간에 해체되고 만다.//사람의 몸이 타면서 남긴 퀴퀴한 냄새/나도 모르게/존재라는 유약함에 눈물을 흘렸다.//영원으로 여행을 떠나는/영가를 위한 위령의식이/삶의 무게에 비해 너무 가벼워 부르르 떨었다.//죽음이 차디찬 얼음인양 냉혹하다는/이 사실을 알고 있다는 하나만으로도/살아 있음은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짜릿짜릿한 행복이라는 것을//고인을 떠나보내는 조화 속의/한 송이 꽃은/생명이 곧 희망이라는 듯/붉게붉게 웃어보였다.“

삶을 밝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

시를 쓰면서 두번째 고민은 존재의 밝음과 어두움이다. 삶을 햇볕처럼 밝게 하는 것은 사랑이고, 삶을 소등(消燈)한 것처럼 어둡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이 인간에게 다가오면 불이 꺼지듯 완전 어둠으로 바뀐다. 사랑이 사람을 찾아오면 대낮에 하늘에 태양이 떠 있는 것처럼 심상의 그림자가 축소되면서 삶 자체가 환해진다. 내 시는 사랑과 죽음이란, 거대한 빛으로서의 사랑과 거대한 죽음으로서의 암흑 사이에 고여 있는, 비가 온 뒤 단단한 땅에 고인, 한 종지의 흙탕물 같은 미미한 존재이다. 빛과 어둠처럼 선명하게 내 곁에 있는 사랑과 죽음을 나는 시라는 도구로 그저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 있어 시인의 생각도 별나지 않다. 다음은 필자의 시 “산자의 특권“의 전문이다

“후손들이 아무리 묘지를 잘 가꾸어도/묘지 속 선조들은 결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한번 둥그렇게 만든 묘지는 세월에 삭아 흙이 흘러내리고/잡풀이 무성해지더라도 둥그렇게 그 자리만은 지킨다.//망우리 공동묘지 길/친구와 함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산책을 했다.//세상을 살고 있을 때 정치인으로 떵떵거리던 사람/돈 자랑하며, 위세 등등하게 부자로 살던 사람/아름다운 시와 치열하게 소설을 썼던 유명 작가들/묘지는 묘 주인을 칭송하는 비문으로 빛났다.//씨 팔씨 팔하며 세상을 힘겹게 살았던/묘비 없는 묘지도 많을 것이다.//몇 번이고 그 길을 거닐어도/묘에서 벌떡 일어나 산 사람을 반기는 이적은 없다./다만,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산 사람들이/묘지를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죽은 사람들의 묘지는 아무 말이 없을 것이고/산자들은 자신의 가슴이 원하는 대로/무어라고 무어라고 외칠 것이다.//무작정 침묵과 남이 하지 않은 그 무언가의 행동은/산 자와 죽은 자를 감별해 주는 도구다.//산자여, 살아 있음의 특권을 누려라.”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

시를 쓰면서 세번째 고민은 존재의 무거움과 가벼움이란 화두이다. 삶이란 존재를 너무 가볍게 하는 것은 죽음이다. 인간에게 있어 삶이란  죽음이 오기 전까지의 비좁은 공간의 허용에 불과하다. 삶이 너무 가벼워지기 이전에 조급한 마음으로 시를 쓴다. 삶에 있어 사랑이란 존재는 너무 무거워서 그 무게를 견디기 못해 열병을 앓으면서 시어를 찾아 끄억끄억 토해낸다. 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너무 무거운 사랑과 너무 가벼운 죽음 사이에 가두어진 삶이란, 그 자체가 행복 덩어리이다.

댐의 둑은 거대한 수량을 확보하게 하는 최후의 버팀목이다. 인생에 있어 댐의 둑 같은 존재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이라고 단언한다.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은 비물질이나 사랑이 가진 존재의 무게가 없다면, 댐이 터지면 하류가 완전 휩쓸려 초토화 되듯, 사랑이 없어지면 삶은 황폐화된다. 일순간에 모래사막으로 바뀐다. 내 속의 에너지는 죽음이 아닌 사랑이다. 그 사랑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필자는 시 “찐빵이 있는 풍경”에서 “그렇게 사랑했으면서도/붙잡지 않고 떠나보낸/첫사랑의 여인이//영하 날씨/지하철 입구 편의점에서/김을 내뿜는 찐빵처럼/포근한 감각으로 되살아날 때가 있다”고 썼다. 이 시에서 “영혼이 온통 추위에 떨고 있을 때/떠나보내지 말았어야했던/여인이 둥글게둥글게/호빵 되어 다가올 때가 있다.//또다시 생각나지만/"내 곁에 있어 달라"고/말 한마디 못했던 수줍음이/찬 얼음 되어/내 삶을 잠식해 버렸다”고 아쉬워했다. 끝 구절에서는 “머리 풀어 올라가는/김 서림 인양/뜨실 듯하면서도 아련한/그 여인을 느낀다”고 썼다.

필자는 또 “지독한 사랑”이란 시에서 사랑을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지독한 감기에 걸려/꼼짝달싹 못하고/며칠을 드러누운 적이 있는데//친구야, 난 지금/지독한 사랑에 빠져/영혼이 사로잡힌 채/안전부절 상태라네//감기와 사랑은 닮았나 봐/뜨거움이/온 몸을 사로잡고 있어/
눈을 감고 있어도//사랑하는 사람의/얼굴이 아른거려“라고 하소연 했다. 이 시은 중간 부분에서는 “자기만큼/아니 자기 보다 더/날 사랑하고 있다는/예쁜 말에 포로가 됐다네.//인생의 남아 있는 시간이/얼마일지는 알지 못하나/이런 사랑, 이런 지독한 사랑을/친구에게 말할 수 있어 행복하다네”라고 이어갔다.

필자는 시 “큰 비밀”에서도 “온갖 일이 많은/이 세상을 살면서/감춰두고 싶은/큰 비밀 하나 있으면 좋지”라고 운을 떼고 “그리움으로 늘 존재하는/날 사랑해준 사람의/훈훈한 정감이/은밀하게 남아 있다면/이 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어//아무에게도/보여주고 싶지 않은/내 마음 속에 꽁꽁 숨겨둘/큰 비밀 하나 있으면/정말 좋지.//세상 살맛나지”라고, 사랑을 예찬했다.
시인도 눈물을 흘린다. 시 “눈물”에서 눈물 흘리는 이유를 시 속에 용해 시켰다. “살면서, 난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으리./나 자신과 약속을 했다.//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울지를 않았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흑흑대지 않았다.//그런데, 나도 몰래 뚝뚝/가끔씩 눈물이 날 때가 있다.//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너무 보고 싶어질 때/주체할 수 없는, 그 사람 그리움에//기뻐선지, 놓치고 싶지 않아선지/눈가에 눈물이 저절로 저미어 고였다.”고 썼다,

세 가지 고민의 반대적 고민

그러나 아주 가슴 아픈 일과 마주친다. 나는 시를 써 오면서 나에게 다가온 세 가지의 고민을 이야기 했다. 그러나 이 고민을 반대하는 또 다른 고민이 나에게는 있다. 삶의 절망과 희망, 삶의 가벼움과 무거움, 삶의 밝음과 어둠 이란 세 가지 주제로서의 시를 반대로 바라 볼 수밖에 없는, 새로운 차원의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음은 희망이고, 사랑은 절망이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기에 인간은 삶의 희망을 찾아 안절부절 한다. 사랑은 죽음이 오기 전까지 겨우 허용되는 허망하고도 절망적인 것이다. 사랑은 한시적인 삶의 순간에 오고 가는 불완전한 존재에 불과하다. 나는 절망이란 사랑을 쳐다보면서 겨우겨우 시의 단어를 나열하고 있는 나약한 시인인 셈이다.

가장 가벼운 것은 사랑이고 가장 무거운 것은 죽음이다. 사랑은 죽음이 있기 전까지만 일시적으로 허용되는 아주 가벼운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너무 밝은 것은 죽음이고, 너무 어두운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너무 밝은 죽음에 갇힌 나약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시 “얼음호랑이”에서 인간의 하는 일 전체는 얼음 같은 존재로도 보았다. 죽음은 인간을 너무 나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평생 조각을 해온/내가 알고 있는 조각가는/영하 20도의 얼음 방에서/꽁꽁 언 얼음으로 호랑이를 만들었다.//권력자들이 모인 호텔 행사장에 전시된/얼음 호랑이는/호랑이 모습을 빼 닮아 용맹스러웠고/힘 있는 사람들의/시선을 사로잡았다.//실내 기온이 더워지면서 얼음 호랑이가 녹아내려/웅장했던 호랑이는/끝내 물로 변하고 말았다.//조각가는/물에서 얼음이 왔고, 얼음이 물로 돌아간 순환을//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존재하는 것은 모두 다 그런 거지./허무하지.//허무라는 빛이 자신의 가슴에 이미 와 있음을/느끼고 있었으나/허무라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는 이유는/얼음도 물도 작가도,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이미 알고 있어서이다. <필자의 시 '얼음 호랑이'의 전문>”

필자는 시 “참기름”에도 이 문제의 고민을 담았다. “깨를 볶아/금방 짜온 참기름에선/고소한 냄새가 납니다.//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참기름처럼/고소한 인간냄새가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자유로운 내 영혼이 그대 생각에 쥐여 짜졌기 때문이겠지요.//갓 짜온 참기름 한 숟가락/비빔밥에 넣어/휘적휘적 비비면서//인간으로 태어나, 나도 몰래 마음 이끌린/그 사람 생각을 하면/아릿아릿 잊지 못할//그 향기 고소해서 미치겠네요.”

죽음도 어쩌지 못할 것이, 곧 사랑이 아닐까? 이것이 시인으로서 답이다.

정반을 거쳐 다시 합(合)으로

시인으로서의 세 가지 고민을 말했다. 그 세 가지의 고민을 반대하는 개념으로서의 또 다른 고민도 이야기했다. 그러나 종국적으로 나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의 시는 이처럼 광대무변한 세계를 아우르고 있는, 그 사이에서 함께 숨을 쉬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란 사실이다. 삶에 있어 희망과 절망도 하나요, 밝음과 어둠도 하나요, 무거움과 가벼움도 하나라는 사실이다. 두개의 사실은 이질적인 사실인 것처럼 보이나 진정한 사실은 두개로 나누어 놓은 것들이 엄연하게 삶의 내부에서는 늘상 하나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시를 통해 희망과 절망을 한 가슴으로 노래한다. 내 시 속에는 밝음과 어두움이 삶의 방편으로서 혼재한다. 나의 시 속에는 무거움과 가벼움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양립한다.

삶은 대단하게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삶은 때로 시어처럼 웅장한 것이고, 사랑이 깊어질 때처럼 달콤한 것이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교수는 항상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헤어진 여자가 보고 싶을 때마다 훌쩍이기 위해서라고 한다. 나는 그 교수의 사연을 “손수건“이란 시로 표현했다. 다음은 필자의 시 “손수건”의 전문이다.

“다시는 못 볼 사람을 사모하여 흘린 눈물을 닦던/구겨지고 또 구겨진 올올 사이로/그리움의 냄새가 솔솔 피어오른다.//보고 싶어 잠 못 이루다/커피 잔에 마지막 남은 한 방울마저/입술에 적시며/밑바닥에 말라붙은 그리움까지 훔쳐내는/애틋한 사연을 주섬주섬 안고 있다.//젖은 천 조각이 무슨 죄인가//떠나보낸 사람 생각에/가을 갈대 잎처럼 소리 없는 바람에도 흔들리며/마른 눈물을 흘리지나 말지.//잊지 못하게 하는 절절함을/시도 때도 없이 흘려보내는 그 무엇,/정들었음이 죄라면 죄지.//그래도 산자의 그리움 때문에/눈물에 젖은 손수건을/세월의 깊이만큼 힘줄 굵어진 손에 쥔채/훌쩍거리며 이 세상을 살아간다.”

이 시에서도 썼지만, 사람이란? 죽음이 사랑보다 깊어, 인간은 혼자서라도 훌쩍 거리며 살아가는 존재일 수 있다.
*필자/문일석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