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리 어머니’를 그리는 영조의 애틋한 사모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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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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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25년 동안 낳아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 수 있을 듯하다. (중략) 붓을 잡고 글을 쓰려 하니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뒤엎는다. 옛날을 추억하노니 이내 감회가 곱절이나 애틋하구나.”
1744년 어머니 숙빈최씨의 묘호(墓號)를 ‘소령’(昭寧)으로 올린 뒤 영조(1694~1776)가 직접 짓고 쓴 묘갈(墓碣·무덤 앞에 세우는 돌비석)문의 마지막 구절이다.

어머니를 그리는 영조의 마음은 각별했다. 숙빈최씨(1670~1718)는 숙종의 승은을 입어 무수리에서 내명부(內命付) 최고 품계인 숙빈(淑嬪)에까지 오른 인물. 후궁 출신인 어머니의 제사를 지낼 수 없었던 영조는 숙빈최씨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영조가 어머니 사후 대대적인 추숭(追崇) 사업을 벌인 것도 어머니에 대한 애끊는 마음의 발현이었다.

영조는 재위 첫해인 1725년 숙빈최씨의 신도비(神道碑)를 묘역에 세웠고 1744년 묘호를 올렸으며 1753년 화경(和敬)이라는 존호를 올리고 묘소를 소령원(昭寧園)으로 승격시켰다. 이 과정에서 제작된 기록들은 숙빈최씨의 사당인 육상궁(毓祥宮)에 별도 보관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펴낸 <숙빈최씨 자료집>은 영조의 애틋한 ‘사모곡’(思母曲)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장서각이 소장한 숙빈최씨 관련 자료들을 번역·해제했는데 전체 5권 가운데 3권이 먼저 나왔다. 1권에는 숙빈최씨가 영조를 출산할 때 기록인 ‘호산청일기’(護産廳日記)와 장례 절차를 기록한 ‘무술점차일기’(戊戌점次日記) 등이 실렸고, 2권은 묘역 조성 과정을 정리한 등록(謄錄)과 시호를 올릴 때 제작한 의궤(儀軌)를 담았다.

4권은 산도(山圖)와 비문을 정리했다. ‘소령원도’(昭寧園圖·사진) ‘숙빈최씨묘소도형여산론’(淑嬪崔氏墓所圖形與山論) 등 산도는 소령원의 현황을 보여주는 회화식 지형도로서 매우 희소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 자료이다. 2007년 보물 제1535로 지정됐다. 영조가 직접 쓴 ‘숙빈최씨소령묘갈’과 ‘화경숙빈소령원비’ 등 각종 비문 7종의 탁본도 귀중한 자료이다. 자료집에 ‘사친을 위한 영조의 추숭 기록’이란 논문을 실은 윤진영 장서각 연구원은 “이러한 자료는 조선시대 기록으로는 현재 유일하다”면서 “사친을 기억하고 추숭하기 위한 영조의 특별한 관심을 배경으로 제작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