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물과 공기처럼 늘 도처에 있는 거예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8 16:14

본문

"인간은 인간이므로 불행을 벗어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요. 죽음에 대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한 발 더 나아가 그 죽음을 삶의 유용한 요소로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라는 물음을 소설 속에 담았습니다."

올해로 등단 23년이 된 소설가 구효서(52)씨. 그의 일곱번째 소설집 <저녁이 아름다운 집>에는 그가 쉰 살 이쪽저쪽에서 쓴 단편 9편이 묶여 있다. 꿰뚫어 말하자면 이 소설집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불치의 병에 걸린 주인공이 사투 끝에 병마를 극복한다는 해피엔딩 드라마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정조를 풍긴다. 그 죽음은 피해야 하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냥 공기나 물처럼 우리 삶에 편재(遍在)하는 것이다.

무덤에 대한 사전적 정의로 시작하는 표제작에는 3개의 죽음이 포개져 있다. 화자는 죽음을 앞둔 시나리오 작가. 새 집을 지으려고 산 시골 땅을 보기 위해 운전대를 잡은 화자는 홀로 될 아내를 위해 이제부터 운전을 하라고 신경질적으로 종용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남편의 신경질을 이해할 수 없다.

집터 한가운데 자리한 무덤의 이장 여부를 놓고서도 화자와 아내의 갈등이 이어진다. "그 산소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라는 화자와 달리 아내는 비용을 내지 않고 묘지 주인에게 무덤을 옮기도록 할 궁리에 여념이 없다. 미국에서 찾아온 화자의 여동생 부부와의 만남은 아내로 하여금 죽음에 대한 인식의 변전을 가져다주는 사건.

여동생보다 서른다섯 살이나 많은 별스런 성격의 미국인 남편은 갑자기 새 집터의 진입로에 세워져 있는 낙엽송을 사고 싶다며 "나무든 뭐든 모습이란 늘 드러냈다간 감추고 감추었다간 다시 드러내는 것"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다. 그의 한국 방문이 생의 마지막 여행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아내는 무덤을 그대로 두기로 태도를 바꾼다."죽음이야 늘 도처에 있는 건데 마당 곁에 좀 있은들 어때요"(229쪽)

'죽음의 자리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잔잔하게 녹아있는 작품'(문학평론가 정홍수)이라는 평대로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코 앞에 닥친 불행의 요소인 죽음을 새롭게 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살아서 150년, 죽어서 20년을 보낸 굴참나무 고사목이 관찰한 한 빈촌의 삶과 죽음의 드라마인 '명두', 죽은 연인의 영혼과 조우하는 한 피아노 조율사의 순애보인 '조율_피아노 월인천강지곡' 역시 삶과 상보적인 관계로서의 죽음의 의미를 묻는 작품들이다.

넓은 의미로 죽음을 긍정하는 사유는 어떤 의미에서 구효서 소설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화두이다. 2000년대초 그는 죽음을 통해 진실한 사랑을 인식한다는 일련의 이별소설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별이나 소멸, 망각 등 그동안 내가 다뤄왔던 주제는 큰 범주에서 죽음이었다"는 구씨는 "불행의 요소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내 색깔로 이야기하는 것은 작가로서의 내 정당성을 입증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죽은 나무, 초등학생, 소설가 등 다양한 화자는 구효서씨의 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의 특징이다. 구씨는 "내 소설쓰기 작업은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를 다뤄보려는 음악가와 비슷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