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집마다 모시던 조상신, 지역마다 달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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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5-0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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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에 정안수 떠놓고 자식의 안녕을 빌던 어머니들의 모습은 한국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대표적 이미지였다. 농경문화가 지배하던 시절, 한국인의 집안 곳곳에 가신(家神)의 자리가 있었다. 마루나 안방에는 성주(집을 수호하는 신령)·조상신을 모시고 안방이나 작은방에는 삼신(三神), 조왕(竈王), 마당이나 장독대에는 터주를 모셨다. 문에는 문신(門神), 뒷간에 측신(廁神), 외양간엔 우마신(牛馬神)까지 신 없는 자리가 없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고, 특히 아파트 등 현대 가옥으로 거주 형태가 바뀌면서 신들의 모습은 차츰 잊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가신을 모시는 이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0월 22일(목)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센터에서 ‘가정신앙 조사와 문화권역’ 학술 심포지엄을 연다. 발표자들은 2004~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전국 163개 시·군 489개 마을의 가정신앙을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성주·터주·조왕·조상신의 전국 비교 연구를 시도했다. 특히 성주와 터주의 경우 유형에 따라 지역별 분포도를 그린 점이 눈에 띈다. 우리네 정신·종교문화의 청사진에 비유된다.

◆‘한지형’ 대 ‘단지형’=국립문화재연구소 임승범 학예연구사는 가신 중 으뜸신인 성주의 신체(神體)를 종이나 베를 이용한 ‘한지(韓紙)형’과 항아리를 쓴 ‘단지형’, 그 둘이 섞인 복합형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눴다. 경기·충남·경남 일부 지역과 동해안 지역이 ‘한지형’, 전라 지역은 ‘단지형’, 충북 내륙지역은 ‘복합형’으로 구분된다.

강원 지역에선 직사각형으로 접은 한지의 허리 부분을 실로 묶어 대들보에 매 성주신으로 삼았다. 임 연구사는 “아파트에 살면서도 성주신을 모신 자리의 천장에만 숨을 쉬시라고 구멍을 뚫어놓은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남 지역은 대부분 단지에 쌀이나 조상의 이름 등을 봉안하는 형태다. 가족의 생일이나 명절엔 성주신에게 먼저 상을 올린 뒤 어른부터 아이한테까지 내려가는 상물림 풍습이 있었다. 전남 함평에선 1년간 봉안한 성주쌀을 음력 7월에 식구들끼리 먹었다. 집안에 유고가 있으면 먹지 않고 내다 팔았다.

경북 지역에선 성주쌀에 좀이 슬거나 썩으면 집안에 좋지 않다 여겨 먹지 않고 몰래 장에 내다 팔았다. 신을 무조건적으로 모시는 게 아니라 상태를 봐 선택하는 것이다. 제주도에선 술에 백지를 넣어뒀다가 종이가 녹으면서 생긴 하얀 풀을 천장에 붙여놓은 ‘성주풀’을 모셨다.

임 연구사는 “어떤 문화권이든 행정구역이 아니라 자연 하천과 산맥 위주로 생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특히 태백산맥 좌우의 문화는 크게 달랐다”고 설명했다.

◆터주 대 철륭=터주는 집터를 관장하는 신이다. 전남대 서해숙 교수는 터주신앙의 유형에 따라 터주문화권, 철륭문화권, 텃고사문화권, 터신제문화권으로 구분했다. 충청·경기 지역은 대부분의 가정에서 터주신을 모시는 ‘터주문화권’. 이들은 터주를 성주보다 더 크고 무서운 신으로 인식해 주변의 나무를 함부로 베지 않고 땅을 파지 않는 등의 금기를 지켰다. 집 뒤꼍이나 장독대에 쌀을 담은 단지를 놓고 짚으로 만든 터주가리를 씌우는 형태가 많다.

전남지역은 터주를 ‘철륭’이라 부른다. 철륭문화권에선 집터가 세거나 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집들만 철륭신을 모셨다. 집 뒤꼍에 쌀이나 나락을 담은 단지를 모시는 형태가 보편적이다. 터주신앙이 비교적 미약한 경상도 지역은 정초나 가을에 텃고사나 텃제를 간단히 지내는 형태. 여성들이 터주신을 모시는 내륙과 달리 제주도는 남성들이 유교식 터신제를 지내는 점이 독특하다.

서 교수는 “가정신앙에서 모든 문화 요소를 추출해 지도를 만들면 지역사회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며 ‘가정신앙 문화지도’ 작성을 제안했다. 임 연구사는 “한국의 가정이나 가옥 구조는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하나의 우주적 형태였다”며 “우리의 정신문화야말로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