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바뀐다고 세상살이도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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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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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奇談) : 이상야릇하고 재미있는 이야기

“옛날에 쓰레기 매립지에서 몸통 없는 아이 머리가 발견이 됐대. 그때가 일제강점기 시대였는데, 총독부는 조선의 치안 상태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경성 서대문경찰서에 급보가 날아든 거야. 경찰들이 부리나케 현장에 가보니까 잘린 머리의 뒤통수는 두 치 반이나 깨졌고 뇌수가 흘러내렸으며 매립지 곳곳에 핏자국과 뇌수 조각이 흩어져 있었던 거지. 경찰이 조사에 나섰어. 아이의 머리를 싸고 있었던 종이 주머니가 쌀봉지였고, 그 봉지를 쓰는 쌀집을 찾아냈지만 법인이 누군지 알 수는 없었지. 걸인을 데려다놓고 조사를 했더니 그 걸인이 횡설수설하면서 자기가 죽였다고 자백을 한 거야. 그래서 몸통을 찾기 위해 공동묘지에 가봤지만 하나도 엉뚱한 곳만 삽질을 해댄 거지.”

마치 지어낸 이야기 같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다.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1933년 5월 16일 몸통 없는 아이 머리가 발견되었고, 그 다음날 부검결과가 발표된다. 이 일이 발생한지 21일 만에 머리가 없는 아이의 몸통을 발견, 사건은 23일만에 범인을 검거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스캔들을 다룬 <경성기담>(전봉관 지음, 살림, 2006)은 일제 강점기 신문과 잡지에서 10여 차례 이상 보도된 사건 가운데 역사책에서 한 줄 이상 기록되지 않은 사건을 엮은 책이다. 조선시대에 일어난 살인사건, 스캔들, 사기, 투기, 가정 문제 등의 사건들을 역사ㆍ문화적으로 다뤄온 전봉관 교수가 신동아에 <옛날 잡지를 보러가다>를 통해 연재한 글들을 모아 펴냈다. 이야기들은 소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때로 믿기 어려운 황당한 내용은 실제 실렸던 기사의 전문을 인용해 신빙성을 높였다.

근대 조선을 뒤흔든 살인사건과 스캔들

<경성기담>에는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뿐만 아니라, 안동에서 일어나 일본인 순사 살해 사건, 일본 여주인에 의해 성기를 난자당한 채 죽은 조선인 하녀의 참살 사건, 사이비 종교집단으로 확인된 살인만 300건이 넘는 백백교 사건과 같은 미스터리 살인사건이 등장한다. 이어 근대 조선을 뒤흔든 스캔들 사건도 있다. 한국인 최초 창작가곡 취입하고 이화여대 교가를 작곡한 것으로 유명한 안기영 교수가 제자와 4년 동안 해외에서 애정도피행각을 벌인 이야기, 신여성의 선두주자로, 유관순 열사의 선생으로 알려진 박인덕의 이혼사건, 조선 귀족으로 불린 이인용 남작 집안의 유산을 둘러싼 부부 싸움 등이 그것이다.

미스테리한 사건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어느 순간 오싹하기도 하지만, 스캔들 사건을 접하고 있으면 남의 사생활을 엿보는 느낌이 들어 미안하기도 하다. 성기가 찔린 채 발견된 하녀의 이야기를 보고 있을 때는 화성시에서 일어난 10건의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을 떠올리게 되고, 신여성 박인덕의 이혼을 보면서는 학업, 운동, 리더십 모든 면에 있어서 뛰어난 엘리트 여성을 뜻하는 ‘알파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시대는 바뀌었지만, 사람이 살면서 생기는 사건사고들은 바뀌지 않는 듯하다.

사람냄새 나는 인문학은 무엇일까?

필자 전봉관 교수는 에필로그에서 ‘사람냄새가 나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3ㆍ1운동 민족대표 33인이었던 박희도의 친일 행적은 밝혀졌지만 그가 저지를 여 제자 정조 유린사건은 어느 역사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친일보다 성추행이 더 큰 금기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기영이 병든 아내를 저버렸고, 월북했다고 해서 그가 한국 음악에 남긴 업적을 무시할 수도 없다. 공과 사를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보는 인문학의 오랜 금기 속에서 인문학을 연구하는 필자는 “인문학의 현대적 가치가 물질 만능주의에 맞서 훼손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떳떳이 주장하려면 인문학은 더 이상 사생활을 감춰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신문 상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사고들 중 현대사회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대도 조세형, 탈주범 신창원, 조직폭력배 조양은 사건. 혹은 연예인 커플이 폭력으로 이혼했다거나 매 맞는 아내를 넘어 매 맞는 남편들이 들었다는 이야기. 아니면 사이비 종교의 암매장 사건, 사기꾼의 몇 백억 사기사건. 그것도 아니면 탈영병의 총기난사 사건. 신문 상에 등장하는 사건사고들은 사생활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곧 그 사회를 반영하는 역사일 것이다. 100년 뒤, <경성기담>처럼 <서울기담>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