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야 고분 축조방식 신라권 무덤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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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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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야 왕국의 최고지배층 공동묘지로 밝혀진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79호)에 대한 발굴조사가 30년 만에 재개돼 일반에게 전격 공개됐다.
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대동문화재연구원(원장 조영현)은 8일 오후 제1차 지도위원회 및 현장설명회를 통해 "지난 5월 22일부터 고령군 대가야박물관 주변에 있는 지산동 고분군 73·74·75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무덤 축조방식과 순장(殉葬)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지난 1977년 44·45호분, 다음해 32·35호분에 대한 발굴조사 후 30년 만의 발굴조사다.

대동문화재연구원 김병주 상임이사는 “무덤 봉토 및 그 주변 조사를 통해 73호분과 74호분이 봉분 가장자리를 돌로 쌓아 두른 호석(護石)을 서로 떼어 놓긴 했으나, 두 봉분이 맞닿는 부분에는 마치 말안장 모양처럼 흙을 쌓아 연결한 것을 밝혀냈으며, 이런 봉분 연결 방식은 먼저 만든 봉분에다 새로 만드는 봉분을 덧붙이는 신라권 무덤과는 다른 '대가야식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번 조사대상분 자료는 대가야의 묘제와 유물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학술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 대형 봉토분 주변에서 소형 봉토분 3기와 소형 석곽묘 2기가 추가 확인됐고, 대형 봉토분의 봉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노출된 소형 석곽묘는 대형분의 흙을 쌓는 과정에서 동시에 축조한 순장곽(殉葬槨)임이 확인됐다.

또 봉분을 쌓는 데 이용된 흙이 묘광(墓壙)을 파낼 때 나온 것임을 확인하고 대형 봉토분 3기 모두 일정한 구획을 나눠 축조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는 거대한 봉분을 쌓을 때 미리 계획을 짜 일정하게 구간을 나누어 각기 다른 노동그룹이 작업을 했다는 뜻이다.

고분 앞에는 제사를 지낸 흔적과 그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 일부가 출토됐다. 출토 유물 가운데는 은제 귀면(鬼面) 장식과 은제 칼집 장식, 금동제 연봉형 장식, 발형기대, 통현기대, 고배 등이 있다.

지산동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만 해도 무려 600기로 추산되는 봉분이 있었으나 현재는 그 절반 이상이 사라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