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 신분이 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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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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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회에서는 통치자 등 신분이 높은 사람이나 남편이 죽었을 때 신하나 처첩, 노비들이 뒤를 따라 죽는 장례 습속이 있었다. 殉葬(순장) 또는 殉死(순사) 풍습이다. 특히 고대 문명발상지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분포했던 장법이었다. 순장은 그 사회가 뚜렷한 신분사회, 가부장적 사회였음을 말해주는 지표이기도 한다.
순장은 지배자가 죽으면 저 세상에서도 생전의 신분과 그에 예속된 사람들이 똑같은 상하 관계로 살아간다고 믿는 내세관에서 비롯됐다. 산 채로 또는 강제로 죽이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 묻기도 했다.    

중국은 殷(은)나라 때 이미 순장제가 나타나 西周(서주)시대까지 성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자가 죽으면 그 아내와 첩, 하녀 등 망자 소유의 여자들은 한 무덤 속에 묻혀야 했다. 그 과정이 너무 처참해서 훗날엔 대신 나무인형을 망자와 함께 묻는 것으로 바뀌기도 했다.

여하튼 이 풍습은 시대 흐름에 따라 격감하다가 明`淸(명`청)대에 또다시 성행했다. 죽은 남편을 따라 지체 없이 목숨을 끊는 아내는 烈女(열녀)로서 크게 칭송받았으며, 열녀들이 있는 곳엔 牌坊(패방) 즉 열녀문을 세워 모범으로 삼았다. 1725년에 편찬된 ‘古今圖書集成(고금도서집성)’에는 18세기 초반까지 여성 수절자가 명`청대에 가장 많고, 남편 사후 자살 및 타살된 여성의 수도 이 시대에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사회의 폐쇄성 등을 고려할 때 정확성 여부는 미지수지만 자의든 타의든 남편을 따라 죽은 여성이 그만큼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순장은 중국보다는 늦지만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랜 풍습으로 내려오다 신라 지증왕 때 폐지됐다. 임당고분군, 고령 지산동 44`45호분 등에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최근 大伽倻(대가야) 본거지인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군에서 1천여 점의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돼 화제다. 73`74`75호분과 주변 소형 고분에서 나왔는데 5세기 대가야인들의 생활 면모를 보여주는 고고학적 자료들이라 한다. 특히 75호분 석실에서 최소 7명의 殉葬槨(순장곽)을 확인하게 된 것이 큰 성과다. 그간 한`일 고고학계는 지산동 44`45호분의 순장곽 등을 두고도 순장 논쟁을 벌여왔지만 이로써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