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표준영정 봉안·고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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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5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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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논개(1574-1593) 얼굴이 4세기를 훨씬 지나 우리 곁에 왔다. '왜색'의 영정을 버리고 새 영정이 봉안되었다.

1593년 임진왜란 진주성싸움 때 왜장(게야무라 로쿠스케)을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던 논개의 얼굴이 다시 나타났다. 논개 표준영정(제79호, 작가 윤여환) 봉안·고유제가 23일 오후 경남 진주 촉석루·의기사에서 열렸다.

논개 순국지인 진주 의기사와 출생지인 전북 장수 의암사에는 새 영정이 봉안되었다. 그동안 이곳에서는 친일화가의 붓으로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제 고증을 제대로 거쳐 정부로부터 공식 지정받은 표준영정이 걸렸다.

이날 봉안․고유제는 진주와 장수지역 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고유제는 촉석루에서 거행되었고, 뒤이어 의기사에 영정 제막식이 열렸다.

초헌관은 정영석 진주시장, 아헌관은 리영달 논개제제전위원장, 종헌관은 박둘순 진주시여성단체협의회장, 고유사는 장일영 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 등이 맡았다.

"하늘을 울린 그 맵고도 숭고한 호국정신을 가까이 하고자 그동안 봉안해 온 영정을 바꾸기로, 만 사람이 더불어 뜻을 모으고 전국 현상공모에 과학적 고증과 국가 동상영정심의위원회의 엄격한 심의를 거쳐 지정된 새 영정을 봉안하면서 맑은 잔과 포과를 올리오니 너그러이 흠향하옵고, 영세토록 편안하소서." (고유문 일부)

정영석 진주시장은 "의기 논개영정이 오랫동안 논란이 있었는데, 시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다 같은 마음으로 성스럽게 봉안하게 됐다"며 "앞으로 의기 논개의 충절정신이 더욱 성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작가 윤여환 교수(충남대)는 "감회가 새롭다, 최고 영정이었던 김은호의 영정을 내리고 표준영정을 봉안하게 되어 뜻깊다"면서 "김은호 영정은 나름대로 작품이 좋았으나 복식 등이 맞지 않았다, 이번에 철저하게 고증해서 새 영정을 봉안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순태 장수논개선양회 이사는 "그동안 진주와 장수의 '논개영정'은 같은 작가가 그렸지만 그림은 조금 달랐다"며 "이번에는 한 작가의 같은 작품을 걸게 되어 다행이다, 논개의 얼굴을 전국에 알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의암사에서는 오는 10월 1일(음력 9월 3일, 논개 출생일) '의암제전' 때 새 영정을 봉안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김은호가 그린 '미인도 논개'를 봉안해 놓게 된다.

1990년대 초부터 논란 일어... 시민단체 강제 폐출이 계기

그동안 의기사에는 김은호(이당)가 1960년대 그린 '미인도 논개' 복사본이 걸려 있었고, 의암사에는 그 뒤에 김은호가 그린 그림이 걸려 있었다.

논개 표준영정을 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1990년대부터 일어났다. <진주신문>에서 1993년 7월 "의기사 논개영정은 친일화가가 그렸다"는 보도를 한 뒤, "진주성에서 친일을 거둬내야 한다"는 시민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김은호는 부왜 여성단체인 애국금차회 회원들이 비녀를 비롯한 금붙이를 뽑아 일본의 전쟁자금으로 바치는 '금차봉납도'를 그리는 등 왜로에 빌붙은 친일행적이 뚜렷하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번에 그를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또 김은호가 그린 '미인도 논개'는 고증이 엉터리였다. 머리모양과 옷매무새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1800년대 후반이었다. 친일작가가 그린 데다 고증도 잘못되어 새 영정을 모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진주지역 시민단체들은 2005년 5월 10일 의기사에 걸려있던 미인도 논개 복사본을 강제로 뜯어냈다. 당시 박노정 친일잔재청산진주시민행동 공동대표 등 시민단체 활동가 4명은 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박 공동대표 등은 벌금을 낼 수 없다며 10일간 진주교도소에서 노역장에 유치된 뒤, 시민성금으로 모아진 벌금을 대납하고서야 풀려났다.

그동안 '출생지' 장수와 '순국지' 진주는 논개 선양사업을 놓고 경쟁하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러다가 김은호의 '미인도 논개 복사본'을 강제로 뜯어낸 게 계기가 되어 표준영정을 제작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2005년 7월 진주시․장수군과 지역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논개영정심의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그해 9월부터 표준영정 공모를 위한 협의가 진행되었다.

2006년 1월 전국 단위로 현상공모를 하게 되었고, 그해 7월 윤여환 충남대 교수가 표준영정 작가로 선정되었다. 문화관광부 동상영정심의위원회는 2008년 2월 4일 윤여환 교수가 그린 영정을 '논개표준영정'으로 지정(제79호)했다.

진주시와 장수군은 논개표준영정의 원본을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하기로 합의했다. 의기사와 의암사에는 논개표준영정 이모본(移模本)을 봉안하기로 했다.

박노정 공동대표는 "어쨌거나 새 논개영정을 봉안하는 의미는 울컥하도록 각별하다"면서 "그것은 7만 민관군과 논개 순절의 고귀한 정신이 깃든 진주성에 왜색을 그대로 두고 향을 사를 수 없다는 진주사람들의 최소한 자기확립의 발로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도 부여했다.

"같은 문제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장수군과 견해 차이에도 서로 양보하며 논개영정 공모와 제작에 함께하여 원만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자랑스럽다. 새 논개영정 봉안은 모두의 승리인 것이다. 과거사 정리는 결코 국력낭비가 아니다. 감추고 왜곡하는 것이야말로 국력낭비요 비겁한 행위인 것이다. 논개는 겨레의 넋이요 성처녀로 결코 지울 수 없는 민족의 상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