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옷을 벗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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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4-1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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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수필가
죽음은 자기 자신의 끊임없는 삶의 조수, 그 물결로부터 벗어나는 일일까? 그리하여 숨결이 자유로워지고 마음이 넓어져 아무런 장애를 받지 않고 신과 우주를 찾아 날아오르는 것일까? 이즈막에 이르러 문득문득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에 적힌 이 문구에 의문점을 갖곤 한다.

나를 어머니 못지않게 사랑했던 외할머니, 큰 이모, 그리고 서른다섯 젊은 나이에 요절한 막내 남동생도 『칼릴지브란의 예언자』의 내용처럼 신과 우주를 찾아 간 것일까? 그들의 죽음을 떠올릴 때마다 새삼 그 실체에 대해 더욱 깊은 고뇌를 하곤 한다.

죽음의 품엔 안긴 할머니, 이모, 남동생, 이들은 생전 최선을 다하여 살았었다. 외할머닌 경주 김 씨 대종손인 외할아버지한테 시집와 나의 친정어머니를 비롯 5남매를 남부럽잖게 키웠다. 큰 이모는 일제강점기 때 어린 나이에 결혼해 슬하에 자식이 없자 남편한테 소박을 맞은 후 질곡의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생전 친정 조카들을 친자식처럼 여기며 사랑을 듬뿍 나눠준 분이다.

남동생은 지방대를 나와 치열한 취업 경쟁률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해 직장에서 장래가 촉망 받는 젊은이였다. 하지만 그것을 시기라도 하듯 죽음의 그림자는 멀쩡한 동생을 갑작스레 덮쳤다.

지난 초겨울, 동생의 장례를 치르며 그 애의 시신 염습을 곁에서 지켜보았다. 졸지에 당한 교통사고로 목숨 줄을 놓은 동생은 미동도 없이 깊은 잠속으로 영원히 빠져들고 있었다. 막내 특유의 어리광이 남았던 선한 눈매, “ 누나!”하며 다정하게 부르던 그 목소리도 더 이상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따뜻하게 내손을 잡아 주던 두 손은 힘없이 손바닥을 펼친 채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던 두 다리도 그 동작을 멈추어 세상을 향해 더 이상 힘찬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였다. 삶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가슴도 심장이 멎어 세상과의 소통도 단절됐다.

동생의 시신에 걸쳤던 옷을 장례사가 한 꺼풀 한 꺼풀 벗길 때 나는 동생이 이젠 생전에 입었던 허욕의 옷을 훌훌 벗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었다. 그동안 철따라 거추장스런 생(生)의 입성을 갈아입느라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입성은 어쩜 오욕칠정으로 한 땀 한 땀 지어진 바람의 옷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품에서 욕망의 옷을 벗어버린 동생은 천국을 향해 날아갈 티끌처럼 가벼운 날개를 얻었지 싶다.

우리네 삶이 바람이 아니고 무엇이랴. 삶의 기쁨, 고통, 희열에 젖는 것도 실은 바람이려니, 인간사에 영원한 기쁨도 없으며 지속적인 고통 또한 없기에 생 자체가 바람이 아니던가. 온갖 욕망을 한 손에 움켜쥐려고 애쓴 것도 인간이 관속에 들어갈 땐 부질없는 헛손질이 아니었던가. 인간이 죽음을 맞으면 이승에서의 부귀와 영화가 한낱 스치는 미풍이었음을 나는 동생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동생도 직장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아 과장 승진을 불과 한 달 여 앞두었었으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그동안 애써 얻은 미래를 몽땅 잃었다. 동생의 피땀 어린 노력도 죽음의 손길 앞엔 한낱 바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동생의 시신에서 생전에 걸쳤던 낡은 바람의 옷이 드디어 벗겨지고 명주 수의가 입혀질 때 난 동생의 영혼이 한껏 자유로워졌음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저세상에 가서는 이승에서의 삶의 고통도 깨끗이 잊고 헛된 욕망에서 자유로운 망자가 되길 간절히 빌었다.

인간은 바람의 옷을 탐하노라 머잖아 자신의 육신에 입혀질 수의를 짐작치 못하고 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삶을 살며 추구했던 일들의 다수가 탐욕일진대 우린 그 옷을 걸친 줄도 모른 채 자신은 죽음과는 무관한 사람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면 지나칠까? 하지만 조상님들은 만에 하나 자신의 심신에 입혀진 바람의 옷을 언젠가는 수의가 벗겨줄 것을 예상하며 늘 겸허한 자세로 삶을 살았다.

어디 그뿐인가? 생을 마친 망자에 대한 예의도 매우 깍듯이 갖췄다. 시신일망정 그것을 허술히 다루지 않고 죽음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 여겼다. 죽어서도 영생을 꿈꾼 나머지 그 시신을 감싸는 세제지구(歲製之具)를 매우 정중히 다뤘다. 수의는 주로 윤달에 마련하였다. 수의를 하루 만에 완성하도록 했다하니 왜 그토록 서둘렀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완성된 수의는 좀이 쏠지 않게 담뱃잎이나 박하 잎을 옷 사이에 두어 보관했다가 칠월칠석에 거풍하였다.

그것의 재료로는 양반집에서는 비단으로 하였으나 일반인들은 명주로 만들었다.

살아생전 인간의 심신을 감쌌던 온갖 욕망의 옷을 벗기는 수의, 필경 나도 내 몸에 친친 감았던 바람의 옷을 그것이 벗길 것이 아닌가. 그 생각에 이르자 요즈음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