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공간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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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3-03-18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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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혁(재단법인 효원가족공원)이사장  

우리의 삶은 희(喜), 노(怒), 애(哀), 락(樂)으로 표현되어지고, 의미가 부여되면 애경사(哀慶事)가 된다.

애경사 중에서 다른 모든 것은 인간의 의지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이루어 지지 않기도 한다. 유독 한 가지만 빼고... 죽음에 따른 애사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절대 진리이나, 그간에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고 꺼려했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고 마주하기 싫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피해 갈 수는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정신과 의사이자 현대적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자 죽음 주제의 가장 존경받는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 분노, 타협, 불안(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쳐서 죽음을 받아들인다 한다.

알폰스 디켄 박사는 5단계를 넘어서 희망을 포함하고 있다. 희망은 죽음 너머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언젠가는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재회하는 기쁨을 생각하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죽어가는 사람이 겪는 죽음의 단계는 죽어가는 사람뿐 만아니라 그를 사랑하는 이들 역시 똑같이 통과하며, 상실 후에는 그 단계들을 다시 겪게 된다. 

이러한 반응들을 말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으리라. 우리는 생각하고 자각하는 존재이기에 고통스러운 반응들 때문에 미리 말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었을 뿐이다.

 죽음에 따른 상실 이후에 유가족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될까?

윌리암 월든의 애도의 과업(task theory) 이론에 따르면, 

죽음에 따른 상실의 현실을 수용하고, 사별 슬픔의 고통을 겪으면서 애도작업하기, 고인을 잃은 새로운 환경에 외적·내적·영적으로 적응하기, 감정적·공간적 재배치의 과정을 지나 삶에 적응해 나간다 한다.

최근 정부의 ‘제3차 장사시설 수습 종합계획’과 관련하여 애도과업 이론에서의 감정적·공간적 재배치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종합계획에서 ‘산분장’과 ‘온라인 추모문화’를 활성화하겠다고 하였는데 이는 효율적이 정책임에는 틀림없으나 애도의 과정을 무시하는 처사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생각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동물도 슬퍼하는 감정이 있는데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은 더 말해 무얼 할까? 미국의 행동생태학자인 ‘케이틀린 오코넬’은 본인의 저서에서 동물도 죽음을 슬퍼한다는 의례 행동을 말하고 있다. 얼룩말은 죽은 얼룩말의 사체 곁에 한동안 꼼짝 않고 머문다. 코끼리는 죽은 코끼리의 몸에 흙을 뿌려 매장하고 사체가 있는 장소로 반복해 되돌아온다. 죽음을 목격한 원숭이는 상실감에 빠져 평소보다 더 많은 상대와 털 고르기를 한다.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애도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한다는 것이다.

삼십만 년 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 또한 죽은 동료를 위하여 꽃을 바치는 행동을 하며, 죽음을 애도하는 장례의식을 치렀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도 있다.

우리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기에, 상실에 직면하면 애도를 통해 상실감을 치유하며 현재에 적응해 나간다.

감정적·공간적 재배치의 과정은 유족들이 고인과 관계를 단절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유족들이 정서적인 삶을 살아나가는 데 고인을 위한 마땅한 공간을 배정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그 공간은 세상에서 유족들이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능케 해준다. 감정적 재배치에 도움이 되는 것은 의례이다. 예를 들면, 묘지방문, 고인의 물건 간직하기, 메모리얼 상자 같은 것 만들기, 가족들끼리 스크랩북 만들기 등이 있다. 이러한 공간과 추억을 되새기는 행위들을 통해서 치유 과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제3차 장사시설 수습 종합계획’은 산분장이라는 집단화로 추모의 공간을 없애고 있으며, 온라인이라는 가상이 현실에 매몰되게 만들어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을 더욱 현실에서 멀어지게 하는 정책을 발표하였다.

보건복지부는 정책을 발표하였기에 무조건 실행할 것이 아니라, 유족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속에 품고 함께 살아 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위로할 수 있는 성숙된 정책을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