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남과 죽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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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23-04-1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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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CSF 발전 연구원장/박철호(시인. 상담학박사)

 

지천이 꽃 대궐이었다. 이 좋은 계절에 80을 넘은 분과 70대 중반의 몇 분이 꽃놀이를 하였다. 놀랍게도 70대들은 아직도 여유가 있어 다음 가는 곳을 재촉한다. 그런데 80이 넘은 분이 꽃송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를 즐겼다. 70대가 왜 그렇게 꽃을 자세히 보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80대가 언제부터인지 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송이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 한 송이의 봉오리를 맺기 위해 얼마나 모진 시간이 필요했겠느냐는 것이다. 그 꽃송이는 다시는 올해 맺은 꽃자리에 꽃을 맺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이 꽃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하느냐는 것이다. 자기 아버지가 나이가 많아지자 꽃송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계시더니 자신이 아버지 나이가 되니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한다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예쁘던 한 시절이 있다. 누구에게나 꿈꾸던 청춘의 시절도 있었다.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나던 그 시절은 무서운 것이 없었다. 꽃나무만 봐도 즐겁고 낙엽이 굴러가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방망이질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황금 같은 시절이 영원히 존재할 줄 알았다. 대개의 사람이 나이가 60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시절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혼도 마찬가지이다. 옛날 어른들은 20대에 자식을 낳으면 키우기가 제일 좋다고 했다. 세상맛이 덜 들었을 때 엄벙덤벙 키우는 자식은 힘든 줄도 모르고 키운다고 했다. 그 어른들의 말씀이 그 어른들 나이가 되어야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는 세상의 이치에 눈을 뜬다. 3~40이 지나가면 세상맛을 알게 되고 요령이 생기면 자기주장이 강해진다. 자기주장이 강해지면 남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살다가 이순(耳順)이 되어야 가을볕에 익어가는 과일처럼 익기 시작한다. 익어감이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추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젊은 시절 남들이 누리지 못한 권력을 누린 사람일수록 나이가 들면 허전함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세상의 명예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재산이 많고 자식을 외국 유학 보내어 세상에 이름을 떨쳐도 스스로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왠지 늘어가는 모습이 추하게 보인다. 노년의 삶이 추하게 보이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다. 죽을 날이 가까이 오면 옛날 어른들이 하신 말씀이 명답 중의 명답이라고 한다. 그 소리가 자신을 향한 소리는 아닐까?

잘 아는 목사님에게서 빈소 없는 장례식을 치렀다는 소리를 들었다. 많은 자료를 통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장례식들을 알아보았다. 앞으로는 상상을 초월하는 별 희한한 장례식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의 문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고민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장례식장 도입으로 공동체 안에서 죽음이 사라졌다. 그 영향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정신적인 문제들을 수많은 연구기관 어디에도 고민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필자는 베이비 세대의 노년 세대 편입을 보면서 태어남과 죽어감의 문제가 새로운 양상의 문제가 될 것이라고 늘 주장했다. 공동체에서 태어남과 죽어감의 문제가 화두가 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이 자명하다. 조선은 태어남과 죽어감의 문제를 조선이 망할 때까지 숙제로 삼았다. 그것이 사례에서 상장례의 완성이었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삼일장, 오일장의 장례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삼일장 장례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무박 2일의 무빈소 장례식이 나타나고 있다. 정오 이전에 운명하면 다음 날 입관해서 오후에 장례식을 치른다. 

당일 장례식도 생겼다. 코로나로 비닐에 싼 혈족의 주검과 30초 작별 인사, 그리고 화장해서 한 줌 유해로 전달되는 장례식, 문제는 그 장례식을 치른 사람들의 정신 변화에 대해 어디에서도 연구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국가가, 사회가 코비드라는 이름으로 죽음을 학대하고 경멸해 버렸다. 더 무서운 일은 유럽 어느 좌파 정부에서 시체의 퇴비화를 발표했다. 그리고 미국의 어느 주 정부에서도 퇴비화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인간의 주검이 반려동물보다 못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예견하건대 베이비 세대는 원스톱 장례식이 유행할 것이다. 자식이 한두 명인 베이비 세대,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천대와 멸시를 받는 샌드위치 세대가 되어버린 베이비 세대, 뼈 빠지게 일해서 가르친 아이들이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노인 이혼이 넘쳐나는 세상이 되다 보니 베이비 세대의 노년은 불안하고 그들의 주검 처리조차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방인이 되어 버린 자식들은 분명 부모의 죽어감을 팽개칠 것이고 주검 처리를 기피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화 한 통, 문자 하나로 죽음과 주검을 처리해 줄 대행사를 찾을 것이고 그다음은 원스톱 장례가 이루어질 것이다. 아마 무박 2일도 호사스러울지 모른다. 원스톱 장례를 치른 사진 몇 장과 정산된 계산서, 지정한 유품 정리함 열쇠와 사망신고서 전달로 장례가 마무리될 것이다. 죽어감은 형해화되고 죽음은 경멸된 체 주검은 퇴비 창고로 갈지도 모르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얼마 전, 대통령이 인구정책 회의를 주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기관은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공식 회의를 7년 만에 열었다고 했다. 인구문제는 태어남과 죽어감의 문제이다. 한 나라의 인구문제는 정치, 이념, 경제 논리와는 전혀 상관없어야 한다. 죽음 문제가 공동체 화두가 되고 태어남의 문제가 국가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삶이 중요하면 죽음도 중요하고 태어남이 중요하면 죽어감도 중요하다. 태어남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다. 태어남과 죽어감을 팽개치는 나라는 분명 망하게 된다. 사람이 귀중하지 않은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태어남과 죽어감은 인류 본질의 문제이고 국가 경영의 기본이다. 이러한 태어남과 죽어감의 문제,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