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와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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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2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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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산대 최청자강사

올해의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이다. 줄장미는 어우러져서 한껏 맵시를 뽐내고 있다. 한 송이 홀로 아름다움을 내 세우지 않고 어울려서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담장이 온통 장미의 물결이다. 순간 눈이 즐거워져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카메라에 비치는 장미는 하늘거리며 얼굴가득 웃음을 머금고 쳐다본다. 세상에 자기보다 예쁜 것이 있으면 나와 보란다. 참 아름다운 세상이다. 장미와 이웃한 나무의 녹색이 더욱 녹색다워 보이는 아름다운 봄날이다.

 가족의 달 5월을 숨 가쁘게 지나왔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이 가족을 더욱 생각하게 하는 달이었다. 어버이날에 찾아 뵌 부모님께는 매번 내가 드리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아서 돌아오곤 한다.

부모님의 내리사랑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날때면 받는 사랑에 익숙한 나를 돌아보곤 한다. 드릴 것도 없는 나의 사랑은 그저 내가 잘 사는 것으로 그만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묻히곤 한다. 올해도 어머니의 사랑을 빈 마음 주머니에 가득 채워서 온 날이었다.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고나니 그 느꺼움에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24일에는 국민상조에서 주최한 ‘가족 해피 페스티벌’행사에 참석을 하였다. 행사는 먼저 간 가족을 추모하면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 되었다. 편지를 낭독할 때 그 자리에는 뜨거운 가족의 사랑이 흘렀다. 나를 세상에 있게 한 존재인 부모님께는 단지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감사한 것이다. 먼저 가신 이를 추모하는 자손의 마음은 늘 아쉬움이 가득하다. 이제 살만해서 효도하고 싶었는데, 아직 보낼 준비가 안 되었는데 가시고야 만 부모님을 생각하는 딸의 마음은 아프기만 하다. 울면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를 낭독한 딸은 많은 아쉬움을 토로했다.

살아계실 때에 잘 해 드리라는 말은 부모님을 보낸 사람들이 하는 내장 속에서 부터 끓어오르는 말이다. 28일에는 노인 복지관에서 죽음준비 강의를 하였다. 어르신들의 해맑은 미소와 가족의 사랑을 확인하는 귀한 자리였다. 행복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덩달아 행복했다. 물론 가족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 그 날의 화제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책은 가족이 가지고 있다.

가족이 모든 인간관계의 출발점이니 가족이 삶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해결점을 가지고 있음은 당연하다. 우리는 가족의 사랑 가운데에서 행복하게 살다가 가족의 사랑에 싸여서 행복한 죽음을 맞을 일이다.  

 19일에 떠난 호스피스 야유회는 동참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평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호스피스를 시작한 갈바리를 가보고 싶었던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맡겼다.

가는 길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갈바리 의원은 강릉 시내에 아담하고 소박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45년 전 처음 시작된 호스피스의 원형을 잊지 않고, 버리지 않고 아름답게 이어가고 있었다. 정원의 풀 한포기, 꽃 한 송이도 자원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 하늘가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비용은 모두 후원회비로 운영이 되며 호스피스 환자는 오로지 죽음준비에 충실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가는 사람과 남는 사람이 함께 스트레스를 줄이면서도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공간으로 설계가 되어 있었고 따듯한 사랑과 호의가 흐르는 공간임이 느껴졌다.

오후의 밝은 햇살이 방으로 가득 들고 환자들은 평화로운 시간을 누리고 있었다. 죽음을 앞두고 성장하는 인간의 모습을 거기서도 볼 수 있었다. 어두운 그림자도 거부하는 몸부림도 거기서는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이 와 있는 방도 있었다. 가족들의 대화는 조용하고 사랑이 가득하게 보였다. 병원내 산재형 병실에서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독립 호스피스 시설이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음을 거부하는 또 분노하는 몸짓으로 인생의 주어진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소중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갈바리에는 자연스럽게 흐르는 인생의 시간이 있었다. 한국에서 처음 호스피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어떻게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돈이 되는 호스피스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앞 둔 사람들에게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너무나 잘 수행하고 있었다.

거리나 어떤 조건에 상관없이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입원이 가능하다고 한다. 너무 늦게 와서 안타깝게 후회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을 보면서 좀 더 일찍 호스피스에 와서 소중한 선물인 삶을 아름답게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인간의 죽음을 향한 거부의 몸짓은 어디까지일까. 환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이 병원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으니 당연히 너무 늦게 호스피스를 만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을 허비한다는 것의 개념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가족과 용서와 화해의 시간을 가지고 후회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시간은 필요한 것이다.

중환자실에서 기계에 둘러싸여서 죽어가는 허무한 죽음은 없어야 할 것이다. 환자를 홀로 두지 않고 돌보는 가장 가까운 이는 역시 가족이다. 가족이기에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이 많다. 호스피스의 현장에서도 유머는 필요하다. 환자를 돕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환자가 유머감각을 키우고 웃을 수 있도록 도와주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죽음을 앞 둔 환자들이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에만 있기를 원할 것 같은가. 아니다. 환자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죽음을 향해서 그저 망연히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유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또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시켜 준다.

유머는 스트레스와 긴장을 완화시켜주며 분노, 적대감, 공격적인 감정을 감소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한 가지 예로 죽음직전의 할머니 한 분이 갑자기 포도주를 달라고 해서 맛있게 드시고, 평소에 피우지도 않던 담배를 달라고 해서 피우고, ‘나 이제 먼저 간다’고 웃으면서 임종을 맞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손들에게 유머를 가르쳐주고 가신 것이다. 보내는 이의 슬픔과 불안, 두려움을 아시고는 유머로 달래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은 가슴 아프지만 언제까지나 아파하면서 살아가기를 원치 않는 배려가 담긴 유머이다. 호스피스 병실에서는 생일 축하 파티도 한다. 죽음 앞에서 생명을 노래하는 것이다. 환자들은 유머를 거부하지 않는다. 환자들이 먼저 유머를 보여줌으로써 남겨지는 가족들을 위로하고자 하기도 한다. 그리고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웃음으로 환자의 고립감과 외로움이 해소가 되며 서로의 연대감을 깊이 느끼기도 한다. 아울러 웃음은 강력한 치료제가 되기도 한다.

환자가 유머를 원치 않는다는 고정관념은 버리고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도우는 입장에서 함께 유머를 통해서 서로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아름다운 미소를 교환해도 좋을 일이다. 환자들에게 별로 줄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 친절한 말 한마디, 따뜻한 눈길, 미소라도 주라고 한 메리포터의 말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