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손님과 접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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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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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진(호스피스봉사자) -
生者必滅!!!
바위 같이 묵직한 고사성어를 꼭대기에 올려놓고 보니 앞이 무거워 엎어질 것 같다.
하지만 생명이 있는 것에는 반드시 죽음이 존재하기에 살아가는 것은 죽어가는 말과 동의어라 하지 않던가.
삶의 끝 언저리, 바로 죽음의 언덕을 막 넘어가는 손님들이 있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피 같은 슬픔이며, 흑암의 고독이며, 벼랑 끝 절망이다.
그래서 죽어가는 이들을 귀한 손님 대하듯 정성껏 대접해 줄 손길이 필요한데 말기암 환자, 치매성 노인들이 바로 그분들이다.
이들을 틈틈이 섬기며 지내온 지 1년 6개월,
손등에 머리 괴고 지난시간 돌아보니 초심 앞에 서게 된다.

외아들 군에 보내고 허전한 맘 달랠 그즈음,
수다라도 떨어야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아 형님 댁을 방문했다.
“올케 우리 교회에서 호스피스 교육이 있는데 이참에 받아볼래?
요즘 아들 군대에 보내고 솔직히 허전하잖아, 믿음도 키울 겸.”
"예 형님, 좋긴 한데... 전 비위가 약해 냄새에 무지 약하걸랑요."
"그럼 8주간 교육만이라도 받아보자, 그것만도 얼만데.."
"네! 그 정도는 좋아요."
이렇게 다가온 호스피스 교육이 내 생애에 커다란 느낌표로 새겨 질 줄이야...

몇 주간의 교육은 바람에 밀려가는 흰 구름처럼 두둥실 지나갔다.
그사이에 죽음이란 단어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5주째엔, 유언장을 작성했다.
부모님께, 남편께, 아들에게, 그리고 친척과 이웃 분들께 생의 작별의 인사를 글로 남기는데, 가슴속에 고여 가는 슬픔이 어찌나 애달픈지 눈물은 볼을 타고 꺼이꺼이 흘러내렸다.
이들이 내 삶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반성과 용서를 거듭 구하고 회개하고 일어서니
비개인 하늘에 햇살이 비추인다.

드디어 마지막 8주째인 오늘은 현장 체험일.
맘 단단히 먹고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호스피스 병동에 도착하니 선배 봉사자분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신다.
자연에 둘러싸인 깨끗하고 아담한 병동 분위기는 별장과 다름없건만, 이곳엔 죽음과 싸우는 무서운(?)손님들이 계시고, 난... 그들을 접대해야만 한다.
몸 냄새가 심하면 어쩌지? 고통에 못 이겨 욕도 막 한다던데.. 그럼에도 내가 천사의 손길을 내 밀수 있을까?
이론은 열심히 배워 이곳까지 왔지만 가슴은 벌써부터 콩당 거린다.
‘주님.. 제게 힘주세요.’
병동에 들어서며 찬양과 기도로 심신을 무장한 후 앞치마 받아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음식재료를 썰고 다듬어 따끈한 음식을 만들고 그릇에 정갈하게 담아내어 차곡차곡 밀대에 채운 다음 조심스레 환우 방에 들어섰다.
아... 앙상한 볼, 어린이 같은 작고 마른 몸매, 얼굴에 깊이 페인 고통의 주름, 몇몇 분의 환우모습에 난 그만 가슴이 무너졌다.
“환우님 식사 하세요.”
“입맛 없어 못.. 먹겠어요.” 고통에 지친 힘없는 표정, 생의 벼랑 끝에 선 저 외로움...
“조금만이라도 드세요” 한분, 한분 떠먹여 드리는데 가슴이 메어온다.
시간은 분주히 흐르고...

조용한 밤이 되니. 환우 한분이 종이상자에 고이 누워계신다.
비싼 수의가 아닌 평소 즐겨 입던 옷을 입고 평안히 눈감은 체,
슬픔, 고통, 외로움, 다 벗고 삶을 졸업한 행복한 모습으로...  어쩜, 미소까지 짓고 있네.
한분씩 그분을 뵙고 기도하고 지나는데 슬픔보다 평안이 감도는 이곳만의 감격스런 발인예배는 한 영혼이 하늘아버지 품에 안기셨음을 또렷이 보여준다.

새벽 1시쯤일까?
조용히 병실을 둘러보니 50대 되신 아주머니 한분이 가슴의 파스를 다 띠고는 덜덜 떨고
계신다.
말기 유방암에 절개수술을 하셨지만, 병원도 포기하여 이곳에 오셨단다. 찾아오는 가족 없이 고통과 외로움에 못 견디어 밤이 되면 가슴의 파스를 다 떼어내신다. 간호사의 치료 후 조용히 환우 곁에 다가가 손을 잡아드리고는 찬송을 불러드렸다. 주기도문 부탁하시더니 같이 따라하시면서 눈물만 흘리신다.
밤은 점점 깊어지고... 생명의 불씨는 흐느낌처럼 가늘게 타들어가고 ...  
오늘 내가 만난 환우 분들은 다시 볼 수 없겠지...
빈손으로 왔기에 아무것 남김없이 빈손으로 떠나겠지...

이렇게 호스피스 교육과 봉사를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은 노인성 치매환자를 섬기는 일로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 치매환자.
말기암 환자와는 증세만 다를 뿐 생의 마지막 언덕을 힘겹게 넘고 있긴 마찬가지 분들이다.
목욕시켜 드리고, 밥 떠 먹여드리고, 배설물 닦아드리면서도 비위 약한 내가 역겨움도 불쾌함도 느끼지 못하니 이만하면 복 많이 받은 증거다.
가끔, 동화구연, 손유희를 해드리면 어린이 같이 신나게 웃고 덩실 덩실 좋아하신다.
이렇게 볼품없는 조그마한 섬김을 드리면 기쁨과 감사라는 큰 선물을 한 아름 주시는데 돌아가는 발걸음은 늘 푸른 하늘이다.

죽음... 정말 두렵고 혐오스런 존재일까?  
흰 눈이 아름답고, 꽃송이가 아름답고, 둥근달이 아름다운 것은 녹아내림과, 시듦과, 기울어짐이 있기 때문이듯 우리네 삶이 아름다운 것 역시 생의 마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죽음은 삶의 반대편이 아니라 삶을 소중하게 비추이는 조명등과 같은 것.
그래서 나는 죽어가는 분들을 섬길 때마다 살아 있음에 감사했고, 건강함에 감사했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할 수 있었다.
결국 죽어가는 손님을 정성으로 대접할 때마다, 난 하늘아버지가 내게 주신 삶의 의미를 더 깊이 느끼게 된다.   감사와 평안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