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의 죽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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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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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중국적 사유의 중요 관심 대상은 인간 삶 자체라고 알려져 있다. 삶의 본질을 추구하고 올바른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삶의 지혜”가 중국인의 마음속에 뚜렸한 테마로 자리 잡았다.

중국사상의 주된과제를 인간 삶의 영역을 둘러싼 생명의 문제로 파악할 경우 동양사상의 또다른 흐름인 인도철학의 입장과 비교하여 그 성격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도적 전통에서도 괴로움을 벗어나 해탈에 이른다는 실존적 관심이 전반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인도사상에서는 인간의 현실적 삶을 무상(無常)과 괴로움(苦)으로 간주하고 이 괴로움을 벗어나 절대적 자유와 해탈에 도달하려 한다.

이에 비해 중국적 사유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현실적 삶을 긍정하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무한히 확충(擴充)하려는 입장에 있다. 이러한 삶이 긍정적 입장이 보다 선명히 드러나는 것은 인간 삶의 무대가 되는 우주의 생성변화를 보는 시각이다.

인도사상에서는 대체로 자연현상을 가상(假相)으로 보고 현상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재를 구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중국사상은 우주를 일대 생명적 흐름으로 보고 그 생명적 흐름을 인간이 주체적으로 계승하는 것을 바른 삶의 방향으로 제시한다.  
따라서 중국적 사유에서는 다른 문화권에 비해 현세존중 의식이 비교적 강하게 나타난다. 이 현세존중 의식으로 인해 중국인들은 내세, 즉 사후문제나 귀신 문제에 관한 정교한 이론을 구성하지 않았다. 이는 인도사상이나 서구종교와 비교할 때 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중국인들이 귀신의 존재에 관심을 둔 경우도 현세와의 관련이 항상 전제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조상에 대한 제사의식도 조상의 영혼이 길흉화복을 내릴 수 있는 권능을 지녔다는 믿음이나, 효도라는 윤리규범을 지키려는 도덕적 의지 때문에 권장되었다.

중국사상에서 소박하나마 영혼불멸의 이론에 유사한 관점을 제시한 것은 묵가(墨家)사상이다. 묵가는 외면상귀신과 의지적 천의 존재를 굳게 믿었다. 그런데 묵가에서 초월적 존재를 강조한 것도 도덕적 선행을 권장하기 위한 방편적 의미가 강하다는 것이 통설이다.

중국적 사유에 의하면 인간을 둘러싼 자연적 우주는 의미와 생명으로 충만한 자족적 세계이다. 그들은 천지를 최선의 세계, 무한한 창조성으로 충만한 세계로 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들의 활동무대인 중국대륙을  하나의 전체적 세계, 즉 천하라는 관념으로 표현함으로써 다른 세계를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이러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현세를 부정적으로 보고 초월 세계를 찾으려는 사상과는 다른 중국 특유의 현세존중 의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현세존중 의식과 직결된 것으로서 간과할 수 없는 사상은, 우주자연의 모든 현상을 음 ∙ 양 이기(二氣) 의 역동적 상호작용에 의해 설명하는 기철학적(氣哲學的) 견해이다. 이 경우 기는 인간과 자연을 성립시키는 생명적 원동력을 의미하며, 갑골문 시대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거론되었다. 중국의 영원한 철학이라고 할 만한 이 사고는 유가, 묵가, 도가 등 중국에서 태동된 주요 사상의 공통적 기반을 형성하였다.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사상에서도 원기에 의한 생성론을 수용할 정도였다. 특히 도교적 사유에서는 기를 중심한 인간관, 세계관, 실천론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철학적 세계관에서는 인간의 삶과 죽음이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가. 이 문제의 접근에 있어서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인간은 어디까지나 우주 대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적 생성과정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둘째, 인간 존재를 구성 하는 마음과 몸의 두가지 요소는 근본적으로 다른 두 요소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기의 양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비교적 정리되어 이론적 틀을 갖춘 것은 노자, 장자의 초기 도가사상에서 비롯된다. 기철학적 이론이 정비되기 이전 고대 중국에서는 인간의 구성요소를 혼과 백의 두가지로 보고, 죽음이 닥치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혼은 사고, 감정 등의 정신적 작용을 주관하는 정신적 요소를, 백은 육체의 생리적 작용을 주관하는 물질적 요소를 뜻한다. 이러한 사고는 다른 문화권에서 흔히 나타나는 영 ∙ 육 이원론적 사고와 어느 정도 유사한 면이 있다. 그러나 기철학적 사고가 일반화되면서부터 혼과 백의 구별은 영 ∙ 육 이원론적 사고와는 달리 본지적 구별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었다. 기의 흩어지고 모이는 현상의 범주안에서 혼 ∙ 백의 존재가 논의되기에 이른다.

기철학적 입장에 의거하여 인간의 삶과 죽음을 해명하는 가장 전형적인 표현은 장자(莊子)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다.

“사람의 삶은 기가 모인 것에 불과하다. 기가 모이면 삶이요, 흩어지면 죽음이다.”

삶과 죽음은 기의 모임과 흩어짐일 뿐 따로 어떤 주재자에 의해 예정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생과 사는 천지등 관통하는 일기의 변화과정에 속한다는 의미에서 볼 때 일체이며 동상이다. 삶과 죽음은 한시도 고정되지 않는 자연의 유동과 변화, 순환작용의 일부에 불과하다.

삶과 죽음을 기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생각하는 견해에는 그 후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덧붙여진다. 가장 인상적인 설명은 도가 계통의 인물인 회남자(淮南子)에 의해 천명된 견해이다. 그에 따르면 “세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원초적 존재인 기가 혼돈상태로 존재한다. 그것은 맑고 가벼운[淸輕] 기와, 무겁고 탁한[重獨촉] 기로 나누어진다. 앞의 기는 떠올라 하늘이 되고, 뒤의 기는 가라앉아 땅이 된다. 이 천지 이기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물이 생성되며, 이때 부여받은 기의 종류에 따라 천차만별의 차별상이 나타난다. 이 중 인간은 천지의 가장 뛰어난 기[秀氣]를 받아 생성된다. 이 경우 하늘의 기는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회남자의 설명은 인간의 구조를 혼과 백으로 구분하는 고대의 사고를 기철학적으로 변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관자(管子), 장자(莊子) 등의 도가적 저서에서 넓은 의미를 기를 다시 게 가지 요소, 즉 정(精), 좁은 의미의 기, 신(神) 등으로 분류하는 시도가 나타나는 것은 수(隋), 오대(五代)에 이르러서다. 이에 의하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좀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생명의 원동력은 정(精)이며, 이 정이 고갈되면 인간에게 죽음이 온다고 한다. 이때 정은 기의 보다 정밀한 상태의 명칭이며, 좁은 의미의 기 및 신(神)은 생명 활동의 구체적 양태를 뜻한다. 이러한 정 ∙ 기 ∙ 신론에 근거하여 삶을 이해하고 삶을 충실히 보존함으로써 죽음에 대비하려는 사고는 특히 수련도교(修鍊道敎)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한다. 이밖에 황제내경을 비롯한 의학서적과 소녀경 등의 방중서에도 그 여운이 미친다.

이와 같이 삶과 죽음을 자연적인 과정의 일부, 즉 기의 모임과 흩어짐으로 본다면 죽음의 공포는 어떻게 극복 할 수 있는가. 죽음의 극복에 대한 노력은 초기 도가에서 제시된 정신적 초월의 방향과, 후의 수련도교의 장생불사를 향한 추구의 두 가지로 대별된다.

전자의 입장이 선명하게 부각되는 전형적인 인물은 장자(莊子)이다. 장자의 지략편(至樂篇)에서는 먼저 생사가 자연적 변화과정의 범주에 따르는 현상임을 밝힌다.

“혼돈한 가운데 변화가 이루어져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생겨나며, 형체가 변하여 삶이 나타난다. 삶이 또 변하여 죽음이 오니 이는 천지의 춘하추동 사시변화와 서로 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삶과 죽음은 거시적으로 자연적 변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나라는 주체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장자는 삶과 죽음은 부귀, 빈천 등과 함께 운명의 추이에 속한다고 해석한다.(德充符편) 이러한 운명론적 시각은 소극적 체념이라 기보다는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상황을 총체적으로 연출한 근원적 도를 파악하자는  적극적 자세를 뜻한다. 이러한 자세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만물의 천차만별의 변화현상 자체를 절대평등한 도의 시각에서 관조할 수 있어야 한다. 덕충부(德充符) 편에서는 공자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천지만물을 다르다고 하는 면으로 보면 간과 쓸개도 초나라와 월나라의 거리만큼 멍고, 같다고 하는 면으로 보면 만물은 모두 하나다.”

이러한 절대평등의 시각에 의거한 정신적 주체를 확립함으로써 삶과 죽음이라는 변화현상에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획득하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자는 죽고사는 것은 역시 큰일이지만 그 현상과 함께 옮겨가지 않으면 오히려 만물의 변화를 명령하고 그 근본을 지키다. (德充符)라고 말한다. 자아의 정신적 주체를 수립하여 삶과 죽음이라는 현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참된 자유라는 것이다.

배영기 숭의여자대하교 교수.
         성균관 유도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