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와 장마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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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2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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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부산대 최청자강사

누군가 요즈음을 일러 마른장마라고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장마는 그냥 장마이지 장마에도 마른장마가 있나하는 생각을 하며 웃어 보았다. 슬며시 혼자서 웃는 웃음이 나를 즐겁게 한다.

6월하면 지금처럼 장마가 먼저 생각나곤 한다. 지루하면서도 추적이는 장맛비는 짜증나게도 하지만 게릴라성 폭우가 아니라면 자연현상의 하나로 인정하고 수긍하며 그럭저럭 넘길 수도 있을 것을. 장마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어쩌면 필요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 년 동안 골고루 나누어서 적당하게 비가 오면 제일 좋겠지만 사계절이 분명한 우리나라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장마를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좀 억지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또 있다. 우리 인생에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은 피해 갈 수 없다. 일 년이 사계절로 나뉘어 순환하듯이 인생도 마치 이 사계절처럼 변화하는 것 같다. 태어나고 자라나고 열매맺고 그리고 늙고 병들고 마무리 하는. 그런데 요즈음 이런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려는 움직임이 사회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참 반가운 일이다. 그리도 싫어하던 죽음이 어느틈엔가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 같다. 이미 20여년의 역사를 가진 각당복지재단에서는 도전적인 제목의 ‘죽음준비교육 지도자 과정’을 개설하여서 교육을 하고 있다.

그 곳에는 죽음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물론, 주위사람들에게 죽음준비교육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조계종 복지재단에서도 ‘웰다잉 강사 양성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참여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신청한 사람들이 정원을 넘어서 다음 교육을 예약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한다. 장마와 죽음준비교육을 이렇듯 대비해 보는 건 장마를 피할 수 없는 현실로 인정을 해서 이맘때가 되면 장마를 떠올리고 늘 우산을 챙기는 것처럼, 죽음도 언제 찾아올지 모르지만 미리 준비를 하고 맞이할 일이라고 말 하고 싶다. 당신의 죽음이 아니라 나의 품위있는 죽음이기에 이제는 준비를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즈음 부쩍 호스피스 봉사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도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호스피스 봉사의 현장에서는 늘 먼저 가는 사람들을 잘 배웅하고, 나에게 죽음이 닥쳤을 때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난 16일에는 고대 안암병원에서 실습생 교육이 있었다. 나는 실습생들이 현장에서 실천해야 할 일들에 대한 교육을 했다. 진지한 얼굴로 교육에 임하는 실습생들에게 힘찬 격려의 시선으로 응원을 보냈다.

설레임과 긴장으로 다소곳이 앉아서 교육을 받는 예비 봉사자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이론 교육을 받고 이제 실제로 환자들을 만나는 첫 시간은 긴장과 보람의 연속이다. 봉사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의 앞날이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빌었다.

나도 이들처럼 긴장 속에서 첫 환자와 만나던 그때가 생각이 나면서 이들도 죽음을 대하며 또 다른 성장을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격려의 박수가 절로 나왔다. 17일에는 정릉의 한 환자를 만나려고 가는 도중에 서울대 응급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바쁜 마음으로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은 만원으로 환자와 다급한 가족들의 발길로 분주했다. 환자를 살려 내어야만 하는 가족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것저것 최선을 다해서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검사를 위해서 복도에서 침대에 누운 채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다가가서 손을 잡고 환자의 마음이 평안하기를 기도하였다. 무의식이라고 하지만 환자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나도 마주보면서 따라서 눈에 힘을 주어 보았다.

평소에 병원 한 번 다녀본 적이 없이 건강하던 환자는 동네에 새로 생긴 병원에 그냥 한 번 들러 건강검진을 받아 보자고 갔다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믿어지지 않는 발병이었지만 최선을 다하여 치료를 하였고 얼마 전에는 호스피스 도움을 요청하였다. 가족들과 가정 호스피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앞으로 어떻게 가족과 최선을 다하여 환자를 도울까를 궁리 하였다.

그러나 그 환자는 바로 다음날인 18일에 유명을 달리 하셨다. 조문을 갔다. 가족들의 슬픔은 하늘에 닿아 있었고 장례 절차는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아직은 할 일이 많으신 분인데.. 새 인생의 시작이라는 60인데.. 그 분은 새로운 길을 향하여 그렇게 훨훨 가셨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
호스피스에서는 환자만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별가족의 돌봄도 함께 한다. 사별슬픔의 회복 기간은 개인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보통 1-2년 정도를 필요로 한다. 그 기간 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원을 한다. 예를 들면 사별슬픔을 상담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사별가족의 요청 시에는 상담을 해 준다.

전화를 먼저 걸어 주기도 하고 카드를 보내거나 편지를 쓴다. 아울러 유족을 직접 방문하여서 적극적으로 사별슬픔을 해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슬픔의 반응이나 유족의 현재 건강상태 등을 확인한다. 사별슬픔의 해소를 위한 돌봄(care)은 보통 전문가팀 즉 의사, 간호사, 카운슬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성직자 등이 하는데 지원자나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큰 힘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호스피스의 사별가족 돌봄은 앞으로 더욱 필요성이 큰 분야가 될 것이다.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죽음의 사회적 기능이 강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삼 년이라는 상례의 기간을 통해 충분한 슬픔과 위로를 받고 일상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현대사회에서 죽음의 사회적 기능은 약화되었고, 더욱이 의례의 기간이 짧아져 슬픔을 극복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 되었다.

오늘날의 죽음은 그 큰 슬픔을 모두 개인이 극복해야할 과제로 남겨놓은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사연들을 접할 때 마다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테레사 수녀는 ‘많은 사람이 병들어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고 있는,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없어도 되는 인간이라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심한 병은 아무에게도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였다. 봉사를 실천함으로써 내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누군가를 돕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임을 체험할 수 있기를 권해보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