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오래된 새 길을 가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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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국장례신문 댓글 0건 조회 작성일 14-06-03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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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國人의 生과 死를 논하다 (1) -

지금까지 우리는 선조들이 생각하고 믿었던 하늘과 땅, 우주의 운행질서와 이치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음양오행론적 세계관’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질서를 찾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날로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현대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단순히 비과학적 미신이라고 치부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음양오행론적 세계관’은 동양이 생각한 우주질서의 기본논리로서 세상 모든 질서의 근본에 자리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제에서 밝혔듯이 “죽음”이라는 오래된 길을 걸어가면서 만나는 수많은 이정표와 안내 표지판은 분명  ‘음양오행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안내서였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의 논의는 이러한  ‘음양오행론적 세계관’에 기초해서 한국인이 생각한 생(生)과 사(死)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는 것이다. 강단에서 학생들과의 첫 만남에서 첫 번째 질문은 죽음은 무엇인가이다.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으나 가벼이 말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례’를 묻게 된다. 그러면 되돌아오는 답은 거의가 ‘장례(葬禮)’라고 말한다. 이렇듯이 현재 우리가 접하는 죽음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정점에 장례가 존재하고, 현대 한국인의 죽음의례를 ‘장례’라고 칭하는데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조심스러운 질문을 통해 새로운 논의를 더할까 한다.

이 땅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다고 한다. 그러나 이 긴 역사의 틀 속에서 우리의 죽음의례를 ‘장례’라고 지칭한 것은 언제부터일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일제강점기이후 최근 100년 정도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본래 우리의 죽음의례는 ‘상례(喪禮)’라는 명칭으로 불리었다. 삼국시대 유교가 전래된 이래 한반도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불리워진 죽음의례는 ‘상례’이다. 그런데 이러한 상례의 의미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장의(葬儀)’와 ‘장례(葬禮)’로 바뀌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의 과정에서 우리는 ‘장의사(葬儀社)’라는 단어를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죽음의례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통과의례를 말할 때 쓰이는 관혼상제(冠婚喪祭)에서 죽음의례는 장례가 아니고 상례일까.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기에 명칭을 달리하는 것인가?

이렇듯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잘 모르고 있는 우리의 죽음의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면 상례(喪禮)와 장례(葬禮)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해 논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먼저 죽음에 대해 정의한 ‘死’에 대한 논의이다. 한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갑골문(甲骨文)의 자형이 ‘’이나, 금문(金文)의 자형은 보이지 않는다. 소전(小篆)의 자형이 ‘’으로 갑골문이 자형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자형의 해석에 대해 『설문해자(說文解字)』는 “骨之殘也。从半冎。讀若櫱岸之櫱。,古文歺。”라 하여 “살을 발라낸 뼈의 잔해이다. 반쪽 골(冎)의 의미를 따랐다. 얼안(櫱岸)이라고 할 때의 ‘櫱’처럼 읽는다. ‘’은 ‘歺’의 고문이다.”고 하였고 이러한 견해를 따라 현재 일반적인 해석은 설문의 견해를 따라 몸을 이루는 것이 뼈를 중심으로 살이 붙어있는 모양을 합하여 써서 ‘骨 [뼈 골〕’이라고 하는데, 여기에서 살만 놓아두고 뼈를 발라내면 뼈만 남는다는 의미로 ‘骨’에서 ‘冎’를 없애고 ‘肉’에 내보내다는 것이 ‘入’자를 거꾸로 써서 ‘나가다, 내 보내다’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月’에 ‘’로 합하여 ‘’로 쓴 것이 ‘歺’이라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견해는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骨’의 해석을 “肉之覈也。从冎有肉。”라 하여 “살의 핵심부분이다. 뼈에 살이 있는 의미를 따랐다.”고 하였던 것에서 기인한 것이나 이러한 견해는 갑골문을 보지 못하고 해석한 결과로 잘못된 해석으로 보인다.

먼저  ‘骨’의 자형을 살펴보면, 금문의 자형은 없고, 소전의 자형은 많이 변화되어있어, 갑골문의 자형을 통해 살펴보면, 갑골문의 자형은 모두 ‘’형태를 보이고 있다. 자형의 구성은 ‘’속에 ‘점을 치다’는 의미의 ‘(占)’를 써서 나타내었는데, 자형이 의미하는 것이 ‘점을 치는 것은 큰 뼈에() 금(균열)이 가는 모양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고대에 점을 친다는 것은 뼈에 난 균열을 통해 점을 본 것에서 ‘骨’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骨’의 자형변화를 볼 때 ‘歹’의 자형인 ‘’은 ‘’의 속에 그려 진 ‘(占)’을 쓴 것으로 ‘뼈에 난 균열’을 의미하여 ‘뼈의 잔해’라는 의미로 쓰여 진 것으로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인 것으로 보인다. 이를 기초로 하여 본다면 죽는다는 의미의 ‘死’는 ‘죽어서 뼈만 남게 되는 것으로 변화되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歹’에 ‘匕’를 합하여 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죽음의 의미를 기초로 죽음의례를 지칭하는 장례(葬禮)에서 장(葬)의 자형(字形)을 살펴보면. 갑골문의 자형이 ‘’으로 네모난 구덩이에 시신을 묻는다는 의미로 쓰여 진 것으로 보이고, 금문의 자형은 ‘’이다. 소전(小篆)의 자형은 ‘’이고, 『설문해자(說文解字)』의 자형은 ‘’이다. 이는 자형의 변화가   ⇛  ⇛  ⇛  으로 변화되고 있어 장(葬)의 자형은 ‘시신을 땅에 묻는다’는 글자에서 변화되어 ‘시신을 처리하다.’는 의미로 쓰여 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장법(葬法)을 말할 때 이 글자를 쓴다. 예를 든다면 땅에 묻어 장사지내는 것을 매장(埋葬)이라고 하고, 불로 시신을 태우는 장법을 화장(火葬)이라고 할 때 쓰이는 글자이다. 그런 반면 유교적 죽음의례를 대표하는 용어인 상례(喪禮)에서 말하는 상(喪)은 자형의 변화가 ‘ ⇛  ⇛  ⇛ ’ 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자형의 구성을 살펴보면, ‘망하다, 잃어버리다’는 의미의 망(亡) ‘’과 ‘울다’는 의미의 곡(哭) ‘’을 합하여 상(喪)으로 쓴 것으로 ‘잃어버려서 울다’는 의미가 된다. 즉 상례(喪禮)는 죽음을 통해 혼(魂)과 백(魄)이 분리되어 살아나지 못하게 됨으로써 슬퍼하여 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죽음의례 전체를 총괄하는 용어적 의미를 가지게 됨으로써 상례(喪禮)의 의미속에는 시신을 처리하는 장례(葬禮)가 포함되는 것이다. 이런 자형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에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죽음의례로 장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상례만이 있기 때문에 사례(四禮)라고 하면 관혼상제(冠婚喪祭)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용어해석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이 없었기 때문에 현재 우리의 죽음의례를 진행하는 장소를 장례식장(葬禮式場)이라고 하고, 종사자를 장례지도사(葬禮指導士)라고 한다. 앞선 글자의 의미를 되새겨본다면 얼마나 잘못된 용어로 정의한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움은 국가가 주관하는 죽음의례에서 절정에 달한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지칭할 때 ‘국장(國葬), 국가장(國家葬), 국민장(國民葬)’으로 부른다는 것이다. 이 용어대로 해석한다면 대한민국의 국민은 모두 죽어서 대한민국에 묻히기 때문에 모두 국장이고, 국민장이며, 국가장일 수 있다. 시신을 묻거나하여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슬퍼하는 것이 죽음의례의 기본적인 가치이다. 그래서 조선의 임금이 승하하면 국상(國喪)이라고 했다. 이제 우리의 죽음의례가 왜 상례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아야할 시점을 지나 너무나 멀리까지 지나 온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계속)

이 철 영 을지대학교 장례지도학과 강사